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다시, 해변의 오두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다시, 해변의 오두막

입력
2010.06.14 13:58
0 0

누구도 오두막, 어두운 과거에 대해 말해선 안 된다

그 칩거가 처음부터 모반을 꿈꾼 거라고 단언해도 안 된다

기다림의 빛깔은 이끼를 닮아서, 지금/여기 서있을 뿐

이끼빛은 쪽빛 하늘이나 바다 빛깔과 맞물리기도 하지만

낡은 것/잊혀진 것의 혐의를 벗지는 못한다

내가 소망한 건 세상 풍경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누군가 오ㆍ두ㆍ막이라고 부르는 순간, 왜 오두막은 사라지는지

다만, 착시나 마술쯤으로 여기지 마라

물길과 해안 사이에도 스펙트럼의 창문이 있어

파도가 번쩍 길을 낼 때, 오두막이 지워지는 걸

누구나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열렬한 고립만을 오두막의 과거라 한다면

낡은 이 풍경도 이미 어제의 것은 아니다

백 년을 기다리는 동안, 태풍의 낌새와 함께

다시 또 백 년이 흘러갔다

바다의 책을 읽고, 모래알 글씨를 떠메는 사이

나는 서있거나 누워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죽은 자들의 도시, 혹은 찾을 수 없는 마을처럼

사람들은 결코 이곳에 당도하지 못한다

이쪽/저쪽 사이에도 투명한 가림막이 있어

오ㆍ두ㆍ막 하고, 한번 부를 수 있을 뿐이다

● 어제 공원의 호수에 누군가 빠졌더군요. 119구급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요란하게 일요일 오후의 공원을 질주했습니다. 사람들은 호수 주위로 몰려들어서 구조하는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본 나는 그게 실수였는지 아니면 고의였는지, 혹은 오해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할 일이 없어서 공원에 나왔다가 구경거리가 생겨서 좋다며 뛰어가는 사람들의 이상한 마음이 절벽처럼 호숫가를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 가끔씩 사람들이 모인 풍경을 보면 징그러울 때가 있는데, 그건 그 모습이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장벽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