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른바 '배우 장근석의 허세시리즈'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장근석의 글들이 진심보다는 허세가 유난하다 해서 네티즌들의 입방아에 오른 것이다. 압권은 장근석이 프랑스 파리 여행을 다녀온 뒤 남긴 글이었다. "다시 한번 파리를 갈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한 손에는 와인 병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 들고 샹젤리제 거리에서 이렇게 외칠 테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
프랑스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60)의 여자 주인공 진 세버그가 파리 개선문 앞 거리에서 담배를 피며 영자신문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파는 명장면을 연상케 한다. 장근석의 4차원적 성격이 자연스레 반영된 글인지도 모르지만 '나 영화 좀 봤다'는 은근한 자랑이 묻어난다. 하기야 68혁명의 한복판에서 방황의 끝을 보고자 하는 세 청춘 남녀를 다룬 '몽상가'(2003)에서도 주인공들은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외친다. '네 멋대로 해라' 따라 하기 놀이가 장근석만의 '내 멋대로 유희'는 아닌 것이다.
한 젊은이의 죽음을 통해 방향타 잃은 현대 청춘들의 모습을 표현한 '네 멋대로 해라'가 올해로 개봉 50주년을 맞았다. 기존 영화문법을 무시한 새로운 표현양식으로 프랑스 누벨바그의 탄생을 널리 알린 이 영화는 이리저리 패러디 되고 차용될 정도로 20세기의 고전이 됐다. 한국에서도 동명의 영화와 TV드라마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세를 치렀다.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던 장 뤽 고다르는 4주 동안 찍은 이 데뷔작으로 일약 세계적 거장의 자리에 올랐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보여준 새로움에 대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그의 50년 연출세계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올해 팔순을 맞은 고다르는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필름 소셜리즘'을 선보이며 여전히 현역임을 과시했다. 사망선고를 받은 것으로 종종 여겨지는 사회주의에 대한 애잔한 감상과 확고한 신념을 내비치는 이 영화에서도 그는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도, 극영화도 아닌 낯선 표현법으로 기나긴 잔영을 남긴다. "몸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며 기자회견 몇 시간 전 불참을 통보할 정도의 노구이지만 마음만은 어느 청춘보다 팔팔하게 느껴졌다.
20일 오후 1시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네 멋대로 해라'의 개봉 50주년 기념 상영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라도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외치고 싶다. 데뷔 50년이 지났어도 꺾이지 않은 노장의 기를 좀 받을 수 있을까.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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