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환경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수경(61) 스님이 서울 화계사 주지 자리와 조계종 승적 등을 모두 다 버리겠다는 심경을 밝히고 돌연 잠적했다. 수경 스님은 13일 측근에게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글을 남긴 뒤 주변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수경 스님은 이 글에서 화계사 주지와 조계종 승적을 내려놓는다며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면서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나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다"고 밝혔다. 문수 스님은 지난달 31일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수경 스님은 "나는 죽음이 두렵다. 나 자신의 생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나.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며 "내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다"라고 글을 맺었다.
수경 스님은 충남 청양 출신으로 1967년 수덕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출가했으며 2006년 6월 서울 화계사 주지로 임명됐다. 일찍 환경운동에 투신해 2000년 범불교연대와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상임대표를 지냈고, 2001년 9월부터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를 맡으면서 생명ㆍ평화를 위한 오체투지, 4대강 반대 운동 등을 해왔다.
수경 스님의 측근인 서울 한강선원장 지관 스님은 "스님께서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나는 뭐했나' 하는 자괴감으로 모든 것을 벗어던지겠다는 결심을 한 것 같다"며 "스님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불교환경연대는 갑작스런 수경 스님의 결정에 당혹해하면서 14일 종일 대책회의를 여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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