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흔히 우리는 '액땜했다'라는 말을 쓴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액땜'이란 '앞으로 닥쳐올 액(厄)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기는 것'을 말한다. 잘 알려진 검색사이트에 '액땜'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더니 지난 한 달 동안 57건의 뉴스가 검색되었다. 가장 가까운 예는 2010년 월드컵 국가대표인 이동국이 큰 대회를 앞두고 가방을 잃어 버렸다가 되찾았던 사건이었다. 그 동안 '불운'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던 그가 12년만의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액땜을 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액땜이라는 말을 자주 써왔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을 세우고 고깔을 쓴 풍물놀이패가 장승 앞에서 지신밟기를 했던 것은 마을에 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액땜의 제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색동저고리의 유래에 대해서도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따라 액땜을 하고 복을 받기 위해 5방색(적색, 흑색, 청색, 백색, 황색)을 이어 붙여 입었다고 하는 설명이 유력하다. 그 뿐인가. 우리 조상의 아름다운 미덕의 풍습인 연줄 끊어먹기 놀이에도 액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연줄이 끊어져 날아가 진 편에서 이긴 편을 위해 한 턱 내는 미덕은 이긴 편이 진 편을 위해 연을 끊어 주어 액땜을 대신 해 주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상여(喪輿)를 보면 재수가 좋다.'고 믿었다. 아직까지 '불 난 집에서 장사를 하면 부자가 된다'는 믿음이나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도장을 파면 재수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여전하다.
미신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단순히 잘못된 생각이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불행한 상황에 마주했을 때 거기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이를 털고 일어설 수 있도록 '액땜했다'는 표현을 통해 긍정적으로 해석해 주고 위로해 주려는 우리의 마음을 담는 의미가 있다. 불행을 더 큰 행운의 기회로 바꾸는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기형(基形)인 네 잎 클로버를 행운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한 것도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면 재수 없다는 생각을 한층 노력을 기울여 길조(吉兆)로 바꾸려는 나폴레옹의 용기와 지혜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건강에도 전조(前兆)증상이 있다. 예를 들어 머리에 편두통이 있기 전에 시각(視覺)에 이상이 나타나거나 구토와 같은 소화기 증상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는 반복적이며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심각한 현상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액땜했다고 생각할 일이 혹 건강상 문제로 인해 유발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액땜이라고 그냥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건강이다.
'팔다리가 한참 힘을 잃었다가 되돌아 왔다', '운동 중에 가슴에 잠깐 통증이 있었다', '전에 느끼지 못하던 피로가 급습했다' 등. 가벼우면서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중증질환의 초기 징후의 의미를 갖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괜찮겠지'하는 생각으로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일반인에 의해서는 쉽게 감지되지 않으나 전문가의 적극적인 진찰과 검사를 통해서 진단할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이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하도록 몸이 주인인 내게 건강습관을 바꾸고 체질 개선을 해야 할 때임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액땜인 것이다. 액땜은 바로 건강을 업그레이드하라는 진정한 의미의 경고이듯이 작은 사건이라도 원인이 무엇이고 혹시 미리 알아서 예방할 수 있는 큰일의 전조는 아닌지 교훈을 삼을 필요가 있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책임연구원·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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