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사태의 진짜 이유는 민족 간 빈부격차 때문이다."
키르기스계와 우즈벡계의 충돌로 최소 171명이 숨진 키르기스스탄 분규는 당초 두 민족 청년들의 감정싸움에서 촉발됐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민족 갈등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복잡한 이면이 있다고 14일 미 뉴욕 타임스가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 콜롬비아대 해리먼 국제문제연구소의 알렉산더 쿨리 교수 등 중앙아시아 연구자들은 "두 민족 간 뿌리깊은 반목은 경제문제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전통적 유목민인 키르기스계와 농업에 종사하는 우즈벡계의 경제수준이 벌어지면서 키르기스계의 증오심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전체 인구의 15%정도인 우즈벡계는 주로 남부지역에 밀집해 있다. 사건이 일어난 키르기스 제2의 도시 오쉬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들이 대부분의 상권도 장악하면서 키르기스계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졌다. 처음 키르기스 청년들이 방화를 저지른 곳도 부유한 우즈벡계 자본가의 기부금으로 지은 대학 건물이었다.
해묵은 민족갈등은 최근 정치색이 더해지면서 증폭됐다. 우즈벡계 주민들은 지난 4월 쿠르만벡 바키예프 대통령을 축출하고 들어선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있으나, 오쉬 등 남부는 바키예프의 정치적 근거지로 최근까지도 그를 지지하는 키르기스탄계 주민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민족분규 배후설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이번 사건에 그의 지지자들이 생계수단이 없는 타지키스탄계와 아프간계 용병을 동원, 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와 관련해 벨라루스에 망명중인 바키예프는 14일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키르기스스탄 과도정부는 바키예프 가족이 이번 사태를 뒤에서 조종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편 키르기스스탄 과도정부는 지금까지 171명이 사망하고 1,800여명이 부상당했다고 발표했지만, 국제적십자사는 은신 중인 부상자와 수습 못한 시신들이 많다며 피해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지 주민은 "오쉬에서만 최소 1,000명이 사망했다"며 당국이 우즈벡인계의 피해상황조차 접수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즈벡계 난민 10만여명이 국경을 넘어 우즈벡으로 탈출한 가운데 이날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더 이상 난민을 수용할 여력이 없다며 국경을 봉쇄했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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