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간 사람이라도 뒤돌아보며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면 금세 뒤처지는 게 역사의 순리다. 고대그리스의 뛰어난 문명을 기억하는 이들은 최근 그리스의 IMF사태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했을 것이다. 중세 이후에 많은 식민지를 두고 세계를 주름잡던 선진국이 몰락한 경우도 여럿이다.
오늘날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전에 두 권의 자서전을 썼다. 그는 두 번째 책인 에서 미국의 여러 정치ㆍ사회적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해법 제시를 시도했다. 미국의 교육문제나 과학발전 전략을 다루면서는, 미국 내 수학ㆍ과학교육의 강화 필요를 역설했다. 미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수학은 세계 25위, 과학은 21위인 것이 미국 국가경쟁력 후퇴의 주요 원인이라는 시각이다.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무관심을 탄식하는 그는 한국의 예를 들며 변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결국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이런 변화를 실제 시도하는 중이다. 취임 후 여러 기자회견에서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국가적 관심으로 인해 한국에서 수학ㆍ과학교육이 앞서가고 있는 것을 언급했는데, 미국이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미국정부의 대책도 발표됐다. 학생들의 수학ㆍ과학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우수한 수학 및 과학교사를 양성해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향후 5년간 5억달러를 투자해서 수학과 과학교사를 양성하고 재교육하는 방안이다. 민관 합동 프로그램으로 정부가 반을 내고, 기업 및 재단이 나머지를 부담하는 내용이다. 과학 분야의 연구경쟁력 확보도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 연구재단의 연구비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발표되었다.
아시아의 최고 과학기술 강국을 고른다면 일본일 것이다. 명치유신을 거쳐 일찍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였고, 1901년 1회 노벨상 선정 시에 이미 두 명의 일본 과학자가 생리의학상 후보로 올랐을 정도로 과학의 발전도 빨랐다. 과학 분야 노벨상만 13명을 배출했고, 수학의 최고상인 필즈상 수상자도 3명이나 된다.
하지만 이런 과학강국 일본의 과학자들을 만나면, 여러 우려 섞인 전망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기초과학의 연구현장에서 체감하는 국가 지원의 질과 폭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학 분야의 경우 지난 15년간 교수 자리가 3,000개에서 2,500개로 줄었는데, 우수한 인재가 미래의 전망이 불투명해서 낙심하는 일이 빈번해지니 과학자들의 위기감이 적지 않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고는 기초과학 지원 예산이 더 삭감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래서 일본의 저명한 수학자를 만나면, 한국 수학의 최근 약진과 상승기류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2009년 수학논문수 조사에서 한국은 세계 11위로 올라섰고 고등학생들이 천재성을 다투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한국은 4위의 성적을 냈다. 4,000명 이상의 수학자가 참여하고 개최국 국가원수가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여하는 국제수학자대회는 2014년에 한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물론 여러 면으로 아직 일본보다 한참 아래이지만, 많은 이들이 상승의 추세를 인상적으로 받아들인다.
과학 분야에서 늦은 출발을 한 우리에게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앞선 이의 공과를 분석해서 치밀한 발전전략을 세우고, 희망이라는 무기를 갖고 갈 길을 재촉할 일이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