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과 학생들과 함께 축구시합에 참가했다. 학과별 대항전이었는데, 최소 4강을 자신했던 예비역 학생들의 다짐과는 달리 첫 게임에서 0-8로 대패, 화끈하고 신속하게 예선 탈락을 하고 말았다. 아, 그만 좀 넣지, 생각하는 순간, 우리 팀 골키퍼가 알을 깠고, 그와 동시에 심판의 게임 종료 휘슬이 울렸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웃을 수 있었다. 스코어는 0-8이었지만, 시합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애초 계획했던 3-5-2 포메이션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아아,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구나, 끝까지 공격적이었구나. 그럼, 된 것이었다. 우리는 그냥 축구를 즐긴 것이니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고, 또 축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그것을 직접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해봤기' 때문에,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을 명확히 알 수 있고 보여주는 스포츠, 그것이 바로 축구가 갖고 있는 비밀일 것이다. 이번 학과별 대항전 축구시합에 우리 팀 몇몇 선수들은 그냥 신고 다니던 운동화 바람 그대로 출전했다. 또 몇몇은 시장에서 산 1만5,000원짜리 축구화를 신고 출전했다.(음, 이 축구화의 유일한 단점은 게임이 끝난 후 벗어보면 양말까지 그대로 축구화 색깔로 변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공을 찰 때 발끝에 와 닿는 감각이고, 서로 맞부딪치는 어깨이니까.
이제 다시 월드컵 시즌이다. 어느 한 작가는 '축구는 국기 아래에서 하지만 문학은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일견 맞는 말이지만, 또 한편 틀린 말이기도 하다. 본선에 참가하지 못한 국가의 시민 또한 월드컵을 기다리고 있다. 축구에서 국가가 더 중요해지고 상업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결코 축구의 잘못은 아니다. 축구로, 축구 이외의 것들을 탐하는 자들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소설가 에두아르노 갈레아노는 어느 글에선가 '축구의 역사는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가는 서글픈 여행의 역사다'라고 말한 적 있다.
개인적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최고의 게임은 아르헨티나와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예선전이었다. 그때 아르헨티나 미드필더 캄비아소가 넣은 골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의 예선전 상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또 다시 2006년도와 같은 플레이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 축구는 여전히 의무가 아닌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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