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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아동 어머니의 절규/ "다섯살 아이 진술이라고 못 믿겠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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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아동 어머니의 절규/ "다섯살 아이 진술이라고 못 믿겠다더니…"

입력
2010.06.1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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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진술은 물론 여러 아동심리전문상담사의 소견까지 제출했어요.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무시됐어요. 다섯 살 아이 진술에 신빙성이 없대요.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났지만 지금은 체념하고 살아요."

엄마는 끔찍한 일을 당한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노라고 흐느꼈다. 억울한 피해자가 더 나오기 전에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뿐, 엄마는 많이 지쳐 보였다. 오히려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었다.

세 딸의 엄마 김지숙(39ㆍ가명)씨는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택시기사 박모(50)씨를 사귀게 됐다. 그리고 2008년 4월 둘째 딸 미영(당시 5세ㆍ가명)이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무심코 "엄마 없을 때 아저씨(박씨)랑 뭐하고 놀아"라고 물었는데, 자신의 신체 일부를 계속해서 만진다는 것이었다. 직장에 다니느라 가끔 아이들을 박씨에게 맡겨왔던 게 실수였다.

놀란 김씨는 다음날 바로 아이의 진술을 녹취하기 위해 서울 서부경찰서를 찾았다. 박씨가 딸에게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는 등 차마 입으로는 전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박씨를 고소하면 사건이 해결되리라 믿었던 김씨의 바람은 무너졌다.

김씨는 "아이 말에 일관성이 결여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경찰이 경찰병원과 여성가족부 산하 아동성폭력기관인 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아이가 다시 진술토록 했는데, 애매한 결과가 나오자 경찰이 오히려 나를 '미친 여자' 취급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박씨는 "김씨가 아이들을 이용해 자신을 음해하려 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결국, 경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서울 서부지검으로 송치된 사건은 2008년 7월초 '혐의 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억울함에 밤잠을 설치던 김씨에게 손을 내민 곳은 한국여성민우회 등 민간사회단체였다. 이 곳 상담사들은 사건을 조기에 처리하려는 경찰 등과 달리 우선 딸과 친해지는 노력부터 했다. 4개월간 함께 찰흙놀이를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놀았다.

그런데 주변 사람을 만드는 찰흙놀이 시간에 딸은 유독 박씨의 찰흙인형만은 성기를 강조해 만드는 등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힘을 얻은 김씨는 명지대 예술심리치료연구센터와 한국심리건강센터 등을 돌며 딸이 성추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소견서를 받았다. 민우회에서 소개해준 무료 변론 변호사와 함께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재수사에서도 수사기관은 '증거 불충분'으로 결론 내렸다. 김씨는 "가해자인 박씨와 피해자인 아이를 한 곳에서 진술하도록 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수사가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맡았던 김재련 변호사는 "아이들은 진술 당시 얼마나 졸린지 등 성인이 생각할 수조차 없는 미세한 부분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이런 특징을 진술의 신빙성 측면에서만 보지 말고 우선 제대로 된 환경에서 충분히 진술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아이가 아닌 어른의 눈높이에서 진술이 이뤄지게 하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엄마가 1년 반 넘게 외롭고 긴 싸움을 하는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던 딸은 야뇨증까지 앓고 있다. 낯선 어른을 만나면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이태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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