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시대 비평문학의 새 지평 보여줘"
제21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문학평론가 우찬제(48ㆍ서강대 국문과 교수)씨에 대한 시상식이 11일 오후 4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 상은 한국 근대 비평의 개척자인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ㆍ1903~1985) 선생의 유지를 기려 유족이 출연한 기금으로 한국일보가 제정했다.
이상석 한국일보 부사장은 시상식에서 우씨에게 상금 1,000만원과 상패를 수여했다. 팔봉의 장녀 김복희 여사는 순금 메달을 증정했다.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축사에서 "우씨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창의적인 현장비평을 펼치고 있는 비평계의 중견"이라며 "수상작 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담아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풍성하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우씨는 소상 소감을 통해 "늘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문학과 교감할 수 있는 새로운 비평 스타일을 찾고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팔봉비평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병익)는 상 제정 이후 줄곧 실무간사를 맡고 있는 문학평론가 홍정선 인하대 교수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김복희 여사는 "팔봉비평문학상 제정을 통해 더 나은 사회에 기여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뜻을 가꿔오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시상식에는 팔봉의 3남 김용한씨 등 유족과 문학평론가 김인환 정과리 권오룡 이광호 황종연 신수정 김미현 심진경 김형중 서동욱 강계숙 소영현 허윤진씨, 시인 김광규 김형영 유희경씨, 소설가 정찬 서하진 조용호 김경욱 김미월씨, 김수영 문학과지성사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 우찬제 교수 수상소감 "명사형 언어습관 벗어나 동사·형용사의 풍부함 찾을 것"
소설가이기도 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보면 주인공이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인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극중 의사는 초기에는 명사를 떠올리지 못하다가 더 진행되면 동사나 형용사를 떠올리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인간이 명사부터 배우기 시작하니 먼저 쓰던 말부터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생각과 말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동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명사형 사고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사물을 보거나 일상을 경험하거나 문학을 읽거나 할 때, 그 어떤 경우에도 저 현상을 그 어떤 명사로 이름붙일 수 있을까, 골몰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비평이란 문학과 인간의 특정 현상에 걸맞은 이름 붙이기라는 속생각도 품어 지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중 '시'의 그 장면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혹시 명사형 사고 패턴이 원시적이거나 유아기적인 언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의구심 때문이었습니다. 명사 이후에 익힌 동사나 형용사, 부사가 환기하는 풍부한 음성과 음운 및 의미 자질들의 유기적 국면을 다 헤아리지 못한 채 명사형 언어 습관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반성이 일었던 것입니다. 제가 명사의 영토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삶과 문학의 실상은 역동적으로 탈영토화했을지 모르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명사형 사고에서 동사형 양태로' 라고 적어 보았습니다. 다시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명사형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나가는 진정한 문학은 대체로 대단히 복잡하고 중층적이고 다성적인 목소리와 숨결로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전위적인 문학인들은 언제나 새롭고 역동적인 동사나 형용사로 프로테우스처럼 탈주해 왔습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기 때문이겠지요. 그 역동적인 탈주가 새로운 숨결을 만들고 리듬을 형성하면서 문학과 삶의 신생 지평을 열었던 것입니다. 다시 새 출발선에서 탈주하겠습니다. 제 비평의 그물에 걸린 명사형 자질들을 과감히 버리고, 걸리지 않은 동사나 형용사형 리듬들과 깊이 교감하면서 새로운 호흡으로 새로운 비평 스타일을 찾아보겠습니다.
팔봉 선생은 난세의 현실과 문학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진리를 탐문하고 열정적으로 탈주하려 했던 비평가였습니다. 그 분의 이름으로 상을 주시니 두루 감사합니다. 영화 '시'에서 주인공이 끊임없이 동사와 형용사를 찾아 마침내 한 편의 시를 완성하듯이, 저도 새로운 언어의 세계에서 새로운 비평문학을 일구어나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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