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지음/푸른역사 발행ㆍ전 3권ㆍ각 권 1만8,000~2만1,000원
한문으로 씌어진 우리 고전은 무궁무진한 콘텐츠의 보고다. 한문학자 강명관은 그 노다지를 캐는 광부 같다. 한문 고전에서 뽑아낸 흥미로운 콘텐츠를 요리조리 엮어서 등 풍속사를 다룬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서 말 구슬을 꿰는 솜씨가 일품인데다 글솜씨 또한 시원스러워 독자가 많다.
그가 풍속화로 읽는 시리즈를 완성했다. 2001년 를 통해 선보였던, 풍속화로 당대 풍속을 읽는 참신한 독법을 이번에는 단원 김홍도의 그림, 단원과 혜원 신윤복 외의 조선 후기 풍속화에도 적용했다. 혜원 편인 제3권은 개정판이고, 제1권 와 제 2권 는 이번에 처음 내놓은 것이다.
풍속화에서 조선시대 삶의 숨결을 읽어내려는 그의 눈길은 작은 단서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탐정의 그것처럼 치밀하다. "옛 그림을 꼼꼼히 보니 별 게 다 보이는구나"라고 스스로 썼을 만큼 참 꼼꼼히도 본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표정이나 행동, 사물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예컨대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단옷날의 그네뛰기'에서는 여인들이 들고 있는 부채의 종류가 몇 가지인지 세고, 한 여인이 입에 물고 있는 것이 담배인지 엿인지도 가려낸다. 그러고는 단오와 그네뛰기 이야기, 부채 이야기, 엿 이야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는 품새가 만담꾼을 닮았다. 만담꾼이 그러하듯 자주 옆길로 새기도 하고 구불구불 흘러가면서 구석구석 박아 넣은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책의 만듦새도 예쁘장하고 짜임새가 있다. 풍속화에 등장하는 사물의 실물 사진, 그림 속 정경의 실제 장면을 보여주는 구한말의 사진 등을 나란히 넣어 이해를 돕는다.
그림의 미학적 가치나 표현기법 등은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그림이 전하는 당시 삶의 풍경과 진실이다. 단원의 벼 타작 그림에서 한 사내의 표정이 어둡군, 왜 그럴까. 사당패 놀음을 그린 그림 한 귀퉁이에 닭을 들고 선 총각이 있네, 어디를 가는 길일까. 담배 써는 가게 그림에서 주인장이 보고 있는 책은 무엇일까 등등.
궁금증을 풀기 위해 저자는 조선시대 문집, 저술, 문학작품, 민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기록까지 옛 문헌을 샅샅이 뒤진다. 덕분에 이 책은 그림 보는 재미 못지않게 다양한 옛글을 읽는 재미를 준다. 벼 타작 사내가 시무룩한 것은 수확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수탈에 시달리던 조선 백성의 시름 탓이다. 그림 속에서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혼자 비스듬히 누워 곰방대를 문 채 한가로운 자는 마름일 것이다. 조선시대 소작농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정약용의 시로 읽어보기도 한다. 사당패 놀음 그림의 배경인 청계천 근방 광통교는 조선시대 닭싸움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니, 닭 든 총각은 거기 가는 길일 테고, 조선시대 담배가게는 소설을 읽어주며 이야기도 나누던 카페 같은 곳이었고…. 이렇듯 그림마다 많은 잔가지를 쳐가며 실꾸리 풀듯 줄줄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2권의 개장국 이야기는 능청스럽다. 귀여운 강아지 그림으로 시작해서 복날 개장국 신세가 될 개를 끌고 가는 개백정 그림으로 넘어가고, 내친 김에 개고기 요리법까지 한참 늘어놓고 있어, 읽다보면 웃음이 나온다. 담배가게 그림 이야기에 딸린 조선 후기 금연론과 애연론의 대결은 저자 자신의 금연담으로 이어진다. 투전판 그림 이야기 끝에 작은 도박은 벌하면서 부동산 투기 같은 큰 도박은 놔두는 요즘 세태를 슬쩍 욕하는 등 비판적인 대목도 나온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그림 한 점이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는 법이다. 저자는 풍속화에서 조선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느낀다.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체취를 그림 밖으로 끄집어 낸다.
조선의 장삼이사들의 삶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번 책으로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서문에서 단원과 혜원의 후대 화가인 김준근의 풍속화와 그밖의 풍속화도 적절한 주제 아래 따로 모아서 글을 써보고 싶다고 밝혔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