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한국일보가 보도한 중소기업청 기업호민관실 보고서를 보면 인허가 등 규제 관련 정부조직 전체가 거대한'전봇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정부가 그토록 규제 완화를 외쳤지만 관료사회의 경직성, 특히 약자를 억누르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런 행태에 대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원성이 얼마나 컸는지'행정규제기관의 비보복 정책 수립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 이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공무원 성질 건드리다 찍히면 장사를 접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퍼져있다는 얘기다.
구체적 사례는 읽는 이가 부끄러울 정도다. 어느 부처의 부당한 사무처리에 항의하던 출판 관련 민원인은 다른 부처 일조차 맡지 못하게 됐다. 새로 개발한 정보통신기기의 인증기간 단축을 요청했다가 밉보인 업체는 결국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거래선을 잃었다. 업계 관행에 따라 세금계산서를 끊었다가 가산세를 물게 된 것을 따지던 자동차부품업체는 뒷일이 감당이 안돼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기업호민관은 중소기업청이 기업인의 시각에서 규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7월 만들었다. 그나마 이런 기구가 생겼기에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속으로만 삭이던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던 셈이다. 실제로 최근 설문조사에서 중소기업들은'어차피 해결되지 않는다'는 체념과 '번거롭고 꺼림칙하다'는 염려 때문에 민원 제기나 이의 신청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만나는 중소 상공인들의 하소연에 비하면 이 보고서에 기록된 사례는 그래도 양반이다. 이른바'괘씸죄 신드롬'이다. 기업호민관은 보고서를 토대로 청와대와 총리실에 비보복 정책의 입법화 필요성을 건의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자칫 그 동안 정부와 공무원의 민원인 보복이 많았다고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며 난색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세세한 규제개혁 프로세스를 논하는 것은 사치다. 공복을 자처하는 공직자들의 정신 자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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