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조두순' 김모(45)씨에 대한 주민들의 증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기에 충분한 일들이 A(8)양 납치성폭행 사건 전에도 속속 터졌지만 주민들은 침묵했다. "두려워서" "설마 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사회적 무관심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10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피의자 김씨의 집은 마치 헤어날 수 없는 미로 속에 자리잡은 듯했다. 좁다란 골목이 다세대주택 사이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몇 번이나 길을 헤매야 했다. 심지어 옆 동네에 사는 박모(46)씨는 "나 조차도 일단 들어가면 길을 잃을까 봐 걱정을 하고 무서워서 뒤를 돌아볼 만큼 인근에서 못사는 동네로 소문난 곳"이라고 했다.
길과 맞닿은 김씨의 집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8만원짜리 단칸방. 달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이 2.5m 정도의 벽돌집은 소리가 잘 새나가지 않는 구조에 창문도 없었다. 주민들은 "골목에는 폐쇄회로TV가 설치돼있지 않고 큰 길에만 달려있다"고 했다.
팬티바람으로 여성 집 기웃거려
피의자 김씨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여고생 김모(19)양은 김씨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양은 "아버지가 사고가 나서 한달 전 병원에 입원했는데, 일주일쯤 지나자 (김씨가) 이사 왔다며 먼저 인사를 하더라"고 했다. 그 뒤 김씨는 "혼자 지내냐" "집에는 언제 들어오냐" "아버지는 어디 갔냐"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고, 김양은 "아버지가 병원에 있어 혼자 지낸다"고 답했다.
그게 실수였다. 김양은 "언제부턴가 (김씨가) 우리 집 앞을 기웃거리며 창 틈으로 몇 분이나 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무서웠다"며 "사건이 난 뒤 나도 범행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섬뜩했다"고 말했다. 김양은 해코지가 두려워 미처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주부 김모(45)씨도 무서운 경험을 했다. 며칠 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씨랑 마주쳤는데 팬티 하나만 걸치고 자신을 쳐다보더라는 것. 주부 김씨는 "음흉하게 웃는 모습에 소름이 돋아 다른 길로 돌아 집으로 갔다"며 "그 뒤 딸 둘(고등학생, 중학생)이 귀가할 때는 꼭 데리러 나갔다"고 했다. 그는 "주민들이 반나체로 활보하는 그 놈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고, 경찰에 신고해봤자 별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고 털어놓았다.
피의자 김씨를 그저 조용한 이웃으로 기억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유모(60)씨는 "지난해 11월에 이사를 온 걸로 아는데, 평소엔 길 앞도 쓸고 방도 깔끔하게 해놓는 등 순하게 지낸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다만 그는 "누가 그 집으로 드나드는 걸 본 적은 없고, 팬티만 입고 다니는 일은 흔했다"고 덧붙였다. 근처 가게 주인(63)도 "팬티만 입고 담배를 사러 온 적도 있었고, 술에 취해 술을 사러 온 적도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김씨가 강도강간 혐의로 15년을 복역했고, 몇 해 전엔 15세 소년을 성추행한 끔찍한 범죄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피의자 김씨는 경찰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를 여읜 뒤 부산의 고아원에서 3년간 살며 원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중2 때 나와 홀로 지냈다"고 진술했다.
교문만 닫았다면
이날 오전 피의자 김씨의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A양의 초등학교는 끔찍한 사건이 난 곳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했다. 정문에선 녹색어머니회원들이 등교 안내를 하고 있었고, 저학년들은 끼리끼리 뭉쳐서 종종 부모와 함께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속은 타 들어갔다. 초등학교 1,4학년 두 자녀를 둔 한 엄마는 "예전부터 학생들의 등교 뒤나 휴일엔 교문을 닫아두자고 그렇게 건의했는데, 규정을 들먹이며 일방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더니 기어이 사고가 터졌다"고 분개했다. 아이를 등교시킨 엄마들은 뒤숭숭한 얘기들을 나누느라 한동안 학교를 떠나지 못했다.
심지어 A양의 부모가 사고 뒤 학교에 항의하자 학교 관계자는 "규정대로 했다"는 입장만 반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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