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교 교문 90%이상 개방 '무방비'
"쉬는 시간에 낯선 사람이 화장실이나 학교 복도를 막 다녀요."
10일 오전 등굣길에 만난 서울 S초등학교 1학년 황모양은 낯선 사람이 교내에서 보이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란 듯이 말했다. 이날 황양의 손을 이끌고 학교까지 온 이는 아빠였다. 황씨는 "'제2의 조두순 사건'을 접한 뒤 남의 일 같지 않은 불안한 마음에 평소에는 아내한테 맡겼는데 오늘은 직접 데리고 나왔다"며 "초등학교에 낯선 어른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모 초등학교 김모(34ㆍ여) 교사는 "외판원조차 한 번의 제지 없이 교문을 지나 교무실을 오갈 정도로 학교 문이 개방돼 있다"며 "범죄자가 들어오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막을 방법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내에서 어린 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김모씨 사건은 예외적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 아니다. 매년 1,000건 이상의 13세 미만 미성년자 성폭행이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에 비추어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초등학교에서는 어느 어린이도 이처럼 당할 수 있는 개연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말 광주 모 초등학교 앞에서 성범죄자 관리대상인 이모(42)씨가 여중생을 강제로 끌고 가려다 실패한 뒤 15분만에 이 학교 이모(12)양을 성추행하다 붙잡히는 등 전국의 초등학교는 상습 성범죄자들의 범행 대상 물색장소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충남 보령시의 모 초등학교에서는 지난 3월 학교 앞에 사는 최모(47)씨가 교실까지 난입해 방과 후 남아 있던 초등학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학교의 담은 사라지고, 교문이 개방되면서 외부인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데도 안전을 책임져야 할 경비 인력 한 명 없는 초등학교의 무방비한 실상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1999년 이후 학교 수업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주민에게 학교를 개방토록 한 교육과학기술부의 방침으로 현재 서울에만 578개 초등학교 중 대부분인 540개교가 문을 개방하고 있다. 더욱이 서울시는 2001년부터 시행한 학교 공원화 사업에 따라 400여 초등학교의 담장마저 허물었다. H초등학교 박모 교장은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지원금을 틀어쥐고 있는데 지자체 사업을 공립학교가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학교 환경이 이처럼 허술한 데도 학생안전을 지킬 인력은 태부족이다.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초등학교에는 경비원, 특히 교문에서 출입을 통제할 '수위'가 배치돼 있지 않다. 서울 K초등학교 정모(28) 교사는 "예산을 탓하면서 심지어는 교사 인력까지 줄이는 판에 수위를 둘 수 없는 건 당연한 일 아니냐"며 "이제 교사가 경비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모두 관리한다는 건 사실상 무리"라고 말했다.
물론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경비인력으로 퇴직경찰 등을 배움터지킴이로 두고 낮(오전8시~오후4시)에 교내 순찰을 하지만 방과 후 취약시간과 휴일에는 근무하지 않는다. 제2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A양도 배움터지킴이가 없는 재량휴업일에 변을 당하는 등 배움터지킴이 제도마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더욱이 배움터지킴이의 활동일수는 연 180일이다.
강호순 사건이나 김길태 사건 등 굵직한 일이 터질 때마다 '아동 성폭력 방지 방안'으로 등장한 게 폐쇄회로(CC)TV다. 올 2월 기준으로 서울시에만 전체 587개 초등학교 중 576곳에 CCTV가 설치될 만큼 보편화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범죄예방 및 억지수단으로는 무용지물이라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됐다. 실시간으로 화면을 모니터링 하는 게 아니라 단순 녹화기능에 그치고 있어 사후조치 수단으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한 경찰 관계자는 "CCTV는 폭행이나 강도 사건 등 사후 검거 목적이다. 아동 성폭행 등 발생 자체를 막아야 할 사건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자구책으로 널리 이용하는 휴대폰 안심알림이 서비스조차도 긴급상황에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안심알림이 서비스는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자녀의 위치를 부모에게 정기적으로 알리고, 학생이 휴대폰 비상버튼을 누를 경우 부모나 경찰에 긴급상황을 알리는 기능을 한다. 교과부가 이 사업에 올해만 1,000억원의 예산을 들였다.
그러나 안전에 민감하지 않은 어린이들이 적절하게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 뿐 아니라 오작동으로 부모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일도 적지 않다. 11세 자녀를 둔 김모씨는 최근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할 아이가 1.8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걸로 문자에 찍혀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고 집안이 난리가 난 적이 있다"며 "안심알림이 서비스가 괜한 걱정거리를 만드는 거라면 차라리 사용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A양 사건에서처럼 칼을 들이대는 긴박한 상황에서 어린이들이 휴대폰을 玲淪?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외국에서도 학교를 개방하지만, CCTV 등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안전대책 인원을 두고, 특히 학생과 외부인의 접촉을 막고 있다"며 "현 상황은 사실상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조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강지원기자 stylo@hk.co.kr
■ 교과부 "휴일에도 배움터 지킴이 배치" 또 뒷북
교육과학기술부는 10일 초등생 납치 성폭행 사건과 관련, 시도교육청 초등교육과장 긴급회의를 열어 예방대책의 일환으로 '365일 24시간 학교 안전망 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 또 한번 '사후 약방문' 식 처방을 내놓은 것이다.
우선 초등학교 정규 수업시간대엔 교사 외에 배움터지킴이를, 방과후 활동시간엔 경찰 및 자원봉사자를 교내에 배치해 24시간 안전망을 갖추게 된다. 배움터지킴이는 퇴직 군인이나 경찰, 교사 등이 학교와 계약을 맺고 학생의 등ㆍ하교 및 교내 활동시 안전을 돌보는 서비스다. 지금도 일부 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앞으론 정규 수업시간대에 고정 배치하는 한편, 재량휴업일을 포함한 휴일에도 근무토록 할 방침이다. 또 야간이나 이른 아침엔 경비용역업체 등을 활용해 24시간 순찰하고 교내 폐쇄회로(CC)TV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도서관이나 시청각실, 특별실 등은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기 힘든 '틈새시간'에 학생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맞벌이 가정의 자녀들이 재량휴업일에 방치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저소득층 밀집지역 학교의 경우 재량휴업일을 없애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경찰도 이번 일을 계기로 장기복역 성범죄 전과자를 우범자로 별도 관리하기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무부와 협조해 성범죄를 저질러 복역하다 1990년 이후 출소한 사람 가운데 장기 복역자를 찾아내 관리대상 우범자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올 3월 말 일명'전자발찌법'개정으로 출소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성범죄자한테도 전자발찌를 채울 수 있도록 했지만, 이번 사건 피의자 김씨는 1987년 강도강간 사건으로 15년간 복역한 뒤 2002년에 출소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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