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뢰 피격으로 판단된다"(천안함, 3월26일 오후9시53분 보고)→ 해군 제2함대사령부, 상급기관에 보고 소홀. "북 신형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속초함, 3월27일 00시21분 보고) → 2함대 사령부 "상부에 새떼로 보고하라". "방공기지 근무자가 폭발음 청취"(26일 해군 작전사령부) → 합동참모본부, 해당 부분 삭제한 채 국방부 장관에 보고.
3월 26일 밤 46명의 용사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사태에서 보여준 군 당국의 대응은 총체적 부실 그 자체였다. 10일 감사결과를 발표한 감사원 관계자가 "군 지휘부가 상황파악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사태 발생 직전엔 북한의 어뢰 공격 징후를 파악하고도 대비 태세를 소홀히 했고, 상황 발생 이후에는 늑장 보고를 넘어 허위 보고까지 예사였다. 상황 발생 이후에도 군 대응 매뉴얼은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번 감사는 18일간 고강도로 진행됐다. 감사기간이 당초 예정보다 1주일 늘어난 것이다. 북한 잠수정의 특이 동향을 사전에 파악했다는 사실 확인 등 성과도 다수 있었다. 하지만 감사원이 군 기밀을 이유로 선별해서 발표한 것을 고려하면 이번에 드러난 군의 문제점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서 감사결과 발표가 의혹 해소에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박시종 행정안보감사국장도 "검토하면서 인사 자료 통보 대상자가 또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대청해전 후 北공격 가능성" 결론 후 뒷짐
이번 감사결과 새롭게 드러난 사실 중 대표적인 것이 해군이 천안함 사태 발생 수일 전에 이미 북한 잠수정의 특이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합동참모본부와 해군작전사령부, 2함대사령부는 지난해 11월 전술 토의를 열었다. 대청해전 이후 북한의 공격 루트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의에선 "북한이 기존 침투방식과는 달리 잠수함(정)을 이용해 서북해역에서 우리 함정을 은밀하게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하지만 말 잔치에 불과했다. 2함대사령부가 대청해전 이후 백령도 근해에 천안함을 배치한 게 대표적이다. 천안함은 대잠(對潛) 능력이 부족한 초계함이다. 다시 말해 북한이 잠수함을 이용한 어뢰 공격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도 정작 잠수함 공격에 약한 천안함을 적의 사정권 안으로 보낸 셈이다. 더욱이 2함대사령부 등은 사건 발생 불과 수일 전부터 북한 잠수정 정보를 전달받은 상태였다. 감사원에 따르면 합참은 전술토의 이후 2함대사령부의 대잠 능력 강화조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데도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어뢰 판단" 현장보고 상부로 전달 안돼
천안함 승조원들이 시간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던 시각에 국방부, 해군작전사령부, 2함대사령부는 늑장 보고로 일관했다. 최초 상황 보고부터 우왕좌왕이었다. 2함대사령부는 오후9시28분께 천안함으로부터 사건 발생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해군 작전사령부에는 3분 후, 합참에는 17분 뒤에야 보고했다.
2함대로부터 오후9시45분께 침몰상황을 보고 받은 합참도 마찬가지였다. 합참의장은 오후10시11분, 국방부 장관은 오후10시14분이 돼서야 합참의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합참 지휘통제실에 사건 발생 사실이 접수된 뒤 26분 동안 군 지휘부는 공백 상태였던 셈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군이 초동 대처 지연에 따른 비난을 의식하거나 적의 도발을 경계하는데 소홀했다는 비난을 피하려다 우왕좌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함대사령부는 또 천안함과 속초함 등 현장의 상황 보고를 상부에 전달하는데도 소홀했다. 사건 발생 31분 뒤인 오후9시53분 천안함으로부터 '어뢰 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가 2함대사령부에 접수됐다. 하지만 2함대사령부는 합참, 해군작전사령부 등 상급기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초기 대처에 혼선을 자초했다.
사태 발생 후 속초함은 미확인 해상 표적물을 추적해 6분 가량 격파 사격을 한 뒤 3월27일 새벽 0시 21분 문자정보망을 통해 사건을 정리해 보고했다. "북한 신형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2함대사령부는 상부에 '새떼'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최초 상황보고를 중간부대에서 추정 가감하는 것을 금지한 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특히 속초함장은 감사원 감사에서도 "해상 표적물이 (새떼처럼) 흩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일단 해상 표적물의 실체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당시 표적물의 속도인) 40노트(시속 74.1㎞) 정도면 반잠수정 속도로도 가능하다고 한다"고 말해 반잠수정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합참은 사건 당일 해군 작전사령부로부터 사건발생 시각을 보고 받고도 임의로 수정해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당초 해군작전사령부는 오후9시15분께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 보고했지만 오후9시45분으로 수정한 것이다. 특히 "(대공기지 근무자가) 폭발음을 들었다"는 해군작전사령부의 보고조차 삭제한 채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것이 확인됐다. 합참은 긴급 상황을 전달해야 할 유관 기관 상당수에도 상황을 전파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 위기반 소집ㆍ전투태세 이행 등 매뉴얼 어겨
비상 사태 발생 후의 위기 대응 조치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2함대사령부에서 비상상황이 발령됐기 때문에 국방부는 위기관리반을 소집해야 한다. 하지만 국방부는 실제론 소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김태영 국방 장관에겐 마치 소집한 것처럼 보고했다. 감사원은 "합참 등 일부 관계 부대도 위기조치반을 소집하지 않았고 비상상황시 의무적으로 조치해야 할 전투대응태세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TOD동영상 편집 일부만 공개 불신 자초
감사원은 또 군이 열상감시장비(TOD) 동영상을 편집한 뒤 일부만 공개해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천안함 사태 초기 사건 발생시각 등에 대한 국민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3월 30일 TOD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사건 당일 오후9시33분28초(실제시각 오후9시35분8초) 이후의 영상만 편집해 공개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일 동영상은 오후9시23분58초(실제시각 오후9시25분38초)부터 녹화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감사원은 사건 시점(9시22분) TOD동영상 존재 여부에 대해선 "교신 기록 등을 다 확인했는데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군은 사건 다음날 오전7시40분 청와대 위기상황센터로부터 사건발생시각 등을 알 수 있는 지질자원연구원 지진파 자료를 받고도 당시 혼선이 있었던 사건발생시각에 대한 적극적인 수정 조치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밖에 합참의 합동지휘통제체계(KJCCS) 자료는 군사기밀인데도 이에 대한 보안조치를 소홀히 해 외부에 유출, 혼란 등을 야기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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