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로 만든 옷을 누가 입느냐?' 소리 귀가 따갑게 들었죠."
맞는 말이다. 사람이 입지 않는다. 대신 세계 최대 규모의 호화 유람선이 입는다. 금기숙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는 10일 "세계적인 크루즈 선사인 로열캐리비안과 패션아트 35점 납품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작품들은 향후 20년간 전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인 크루즈선에 국내 패션업계 관계자의 작업이 설치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 교수의 패션아트 작품이 전시될 선박은 국내 선박제조회사 STX의 자회사 STX유럽이 제작, 오는 12월 로열캐리비안에 인도하는 '얼루어 오브 더 시즈(Allure of the Seas)'호다. STX유럽이 건조해 지난해 10월 인도한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Oasis of the Seas)'와 쌍둥이 선박이다. 축구장 3개 반 크기에 수용 인원만 1만명에 육박하는 초호화 유람선으로 금 교수의 작품들은 이 유람선의 객실층인 6층부터 15층까지 시원하게 뚫린 중정(中庭)에 오브제처럼 설치된다.
로열캐리비안사와의 계약은 2004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금 교수의 패션아트 전시회를 본 미술딜러상 인터내셔널 코포레이트 아트사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딱딱한 철사를 마치 섬세한 실처럼 다루며 인체의 아름다움을 녹여내는 작업은 당시 '정교하고 시적인 엘레강스를 통해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평을 얻었다.
금 교수는 "몸에 입혀져야 비로소 패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패션의 지평을 좀 더 넓게 본다"며 "입지 않아도 패션의 아름다움과 창의성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다면 그건 패션행위"라고 말했다.
얼루어 오브 더 시즈호 전시를 통해 세계 상류층들에게 소개될 작품들은 소금기가 많은 바닷바람에도 상하지 않도록 특수 제작된 테프론코팅 철사를 소재로 생동하는 인체에 입혀진 양 뚜렷한 구조를 드러내는 드레스들이다. 100% 수작업을 통해 형태를 만들고 다양한 비즈를 붙여서 바다의 매혹을 표현할 예정.
금 교수는 "꼭 20년을 패션아트에 빠져 살았더니 이제 비로소 길이 보인다"며 "한국기업이 만든 유람선에 한국 패션문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물을 제공하게 된 것이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금 교수는 한국패션문화협회장을 역임했으며 대검중수부장 출신 와당전문가인 유창종 변호사가 반려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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