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방랑 식객'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요리가 임지호 선생을 만나러 가는 길은 동구 밖으로 걸어 나가는 과수원 길을 닮았다. 땅에서 나는 무엇이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입으로 먹을 수 있는 '작품'으로 거듭나기 때문에 임지호 선생을 만나는 날에는 왠지 아카시아가 눈송이처럼 날리고, 선생은 그 아카시아를 한 움큼 바람결에 손으로 잡아 지지고 볶고 무쳐서 맛있고 향긋한 것을 만들어 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다.
자연과의 교감
"아토피가 옛날에도 있었어요. 다만 그때는 사람들이 흙을 밟고 살았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자연치유가 늘 되었던 것이지."
선생은 아이들의 건강, 아이들의 거칠어진 성격을 주제로 첫 운을 떼었다. 결국 온 몸을 불편하게 만드는 아토피라는 병이 열성의 독으로 인해 생기는 것인데 그 독성을 치유, 중화시킬 수 있는 것은 땅을 밟고 자연을 느끼는 일인 것이라는 선생의 말씀이다.
"아이를 가진 사람들은 땅을 밟을 곳, 흙이 있는 곳으로 부지런히 나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메마르고 거칠어져 있는 아이들의 정서까지 회복되니까요." 선생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현대인들의 고민을 명쾌하게 풀어주는 답안지 같지만 사실 요리가 임지호 선생은 아이들의 건강과 정서를 회복시키겠다든가, 만인의 건강을 책임지겠다든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쳐 보겠다는 등의 계획을 두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는 "그저 할 뿐!" 이라고 했다. 머리로 생각했으면 마음을 담아 실천해야 그것이 현실이 된다. 머리로만 계산하고 제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한 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음식강좌를 들을 각오로 '임지호 요리 연구소'를 찾은 내게 선생은 요리 그 너머의 더 큰 뜻에 대해 귀한 가르침을 주신다.
모든 자연에서 식재료를 취하는데 있어 풀 한포기를 뽑아도 몸에 이로울지 아닐지를 어찌 알 수 있는지, 공부를 해서 알게 되는 것인지 여쭈었다.
"그것이 공부를 한다고 됩니까? 깨달아야지요. 모든 자연은 나와 다르지 않아요, 나와 똑 같다는 거지요. 자연일체, 나와 내 밖의 자연은 그저 하나입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가 다 나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말 끝에 선생은 평상 위로 몸을 뻗어 누워버린다. 불과 이틀 전, 프랑스의 정부 인사들을 초대했던 '한식만찬'을 진두지휘하러 프랑스에 다녀온 것이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아 피곤하다며 양해를 구한다. 마침 나른한 양평의 햇살에 맨 정신이 아득해진 나도 선생을 따라 평상에 배를 깔고 엎드린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이어진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식재료를 쓰셨나요? 양념은요? 재미 있으셨나요? 서양음식 잘 드시나요? 아님, 한식만 드시나요?" 프랑스 출장 끝의 피로감을 이야기하던 끝에 나의 질문이 다라락 이어진다.
선생의 대답은 간단하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식재료를 쓴다. 양념은 내 하던대로 한다. 세계 어디를 가든 사람들 먹는 것은 똑같다. 서양이라고, 동양이라고 뭐 하나 다르지 않다. 양식은 있으면 먹는다.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 먹는 것은 아니다.
풀 한포기가 뽑아 올린 땅의 매력
임지호 선생과 담소에 가까운 인터뷰를 나누는 평상 위로 새 지저귀는 소리, 엷은 바람에 나뭇가지 움직이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최근 출간된 선생의 저서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샘터)'로 이야기를 돌려 본다.
"책은 계속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말씀처럼 아토피에도 종류가 있고, 각 증상마다 여기에는 산마를, 저기에는 소나무 껍질을 쓸 수 있으려면 방법을 알아야 하잖아요."
"책은 계속 만들긴 할 거에요. 특히 인문학적 자세로 접근한 책들을 만들고 싶어요."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의 건강이나 정서를 위해 일부러라도 자연을 접하다 보면 모두들 성격도 좋아지겠네요?"
"그렇지요. 몸이 편해지면 마음도 편해지니까."
화제는 얼굴, 배, 등, 마음의 중요함으로 옮겨진다. 사람들은 얼굴을 보고 관상이 중요하다 말하지만, 사실 인간의 배만큼 중요한 것이 또 없다는 것이다. 땅의 기운으로 생명을 틔운 일체의 것들이 우리의 먹을 거리가 된다. 그러니까 우리 배는 만물의 무덤이 되는 것이다. 귀한 생명이 우리 배에 묻힌다. 그러니까 우리는 배를 귀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선생의 말씀을 듣다 보니 기름진 음식과 조미료, 과음으로 혹사시킨 내 배의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저기 양귀비꽃을 보세요. 얼마나 빨갛게 잘 피었습니까. 양귀비가 해석한 땅의 모습은 정열인가 봅니다. 벼는 하얗게 벼꽃을 피우다가 황금빛으로 물들잖아요. 벼는 땅을 해석하기를 순수하고 신뢰가 튼튼하다고 한 것이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인간과 똑같이 제 나름의 해석이 있다. 그것은 땅에 대한, 우주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며 그 표현은 굳이 말을 할 수 없어도 몸으로, 생김으로, 색으로 다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니 나를 둘러싼 내 밖의 모든 것들이 결국 나와 다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 눈에 밟히는 무엇을 먹어도 이물감이 들지 않겠다는 자신이 생긴다. '방랑식객'이라는 별칭을 얻을 만큼 오랜 세월을 발로 다닌 요리가는 일찍이 나와 풀 한 포기가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많은 이들이 식재료라 명칭 붙이지 않은 모든 것들을 본인의 입으로 맛 본 것이다.
남들이 선뜻 입에 넣지 않는 것을 맛본다는 것은 용기와 순수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닐까. 선입견없이, 온전히 내 호기심에서 내가 경험한 것만을 바탕으로 쌓아온 내공이니까 그를 만나본 나의 소감이 요리가 보다는 철학가와의 인터뷰에 가깝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선입견 없는 임지호 선생의 눈빛은 반짝거린다. 아직 세상의 규격과 가르침이 몸에 절지 않은 다섯 살 아이의 눈같이 맑다. 그 눈으로 한참 대화를 나누고 하늘을 보고 몸을 뻗어 눕고 꽃나무를 보더니 쓱 일어나 신을 신는다. 마당 한 쪽에서 벌레 먹은 달래 잎사귀와 라벤더를 주섬주섬 챙겨 딴다. 금방 그의 손에는 식재료가 수북하다.
선생은 "잠깐만 기다려요" 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간다. 벌레 먹은 잎사귀와 보랏빛 꽃잎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내 배를 향해 나올까? 궁금함에 선생을 재촉하고, 주방에 숨어들어 훔쳐보고도 싶지만 꾹 참고 기다린다. 기다린 보람은 선물같이 들고 나타난 선생의 요리에서 만나게 된다.
살짝 튀겨서 녹 빛이 더욱 선명해진 달래 잎 위에 상어 아가미 살코기가 한 입 크기고, 거기에 와인을 졸여 만든 소스가 한 점 붓을 찍고 마지막으로 풋풋한 단맛이 나는 라벤더 꽃이 나비처럼 얹어있다.
"그냥 할 뿐!" 어떤 목적이나 계산을 두지 않고 떠오르는 즉시 손으로 만들어낼 뿐이라는 선생의 말씀이 이 한 접시에 다 담긴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 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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