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대선에 임박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60%대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보다 10%포인트 가량이나 높은 수치였다. 진보이념이 지배하던 과거의 대학가 분위기를 생각할 때 상상할 수 없는 변화였다. 이명박 정권은 그렇게 대학생들을 포함한 젊은층의 높은 지지와 기대 속에 탄생했다.
그로부터 2년 반 만에 실시된 6ㆍ2지방선거에서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당 참패를 초래한 돌풍의 주역은 20, 30대였다. 2007년 대선과 이번 지방선거의 출구조사 결과에서 세대별 투표성향을 비교하면 명백하게 드러나는 사실이다. 서울의 경우 2007년 대선에서 20대 연령층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민주당 정동영 후보보다 27%포인트( 46.0 대 19.0) 많은 표를 몰아줬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보다 민주당 한명숙 후보에게 22.7%포인트(34.0 대 56.7) 많은 표를 주었다. 엄청난 폭의 역전이다. 30대가 보여준 역전의 폭도 비슷했다. 40대 연령층에서도 역전현상이 일어났지만 20, 30대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다.
표변한 20, 30대의 투표성향
정권이 바뀐 지 2년 남짓 되는 시기에 젊은 세대의 투표 성향이 이렇게 표변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탓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자리가 가장 큰 관심사인 젊은층의 기대를 너무 높여 놓았다. 그러나 이미 뿌리를 내린 양극화 구조 속에서 청년층 일자리 창출이나 생활 향상은 쉽게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거기에 '전쟁 불안'이 겹쳤다. 천안함 사건이 일으킨 북풍은 모든 선거 쟁점을 불랙 홀처럼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나 남북 간에 고조된 긴장과 위기 속에 민주당이 들고나온 "전쟁이냐 평화냐"의 구호에 20, 30대가 민감하게 반응했다.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군복무 중인 20대, 이미 군복무를 마쳤지만 유사시 소집대상이 되는 20대 후반, 30대 연령층에게까지도 이 문제는 바로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휴대폰 문자나 트위터, 인터넷 등이 20, 30대 젊은 층을 대거 투표장으로 이끌어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신과 직접 관련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면 평소 정치에 관심이 적은 젊은 층이 투표소로 몰려갈 리는 없다.
20, 30대가 아니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으로 남북간 평화 분위기에 익숙한 다른 연령층의 국민들 가운데도 위기감을 느끼고 투표장에 간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가 외교안보정책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는 하지만 투표 결과에 안정과 평화를 희구하는 민심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은 이 같은 민심을 근거로 정부의 대북강경 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천안함 덫 벗어날 길 찾아야
그러나 이 대통령은 "외교안보 기조는 흔들림 없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기존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제재와 유엔안보리 차원의 조치 논의가 막 시작되는 단계에서 정부가 대북 강경기조를 갑자기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이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압력에 물러서 계기를 마련해 주면 일이 쉽게 풀릴 수 있다. 하지만 천안함 도발의 성격상 북한이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를 수용할 리는 만무하다. 남한의 모략극이라며 10만 군중이 모인 규탄대회까지 여는 그들이다.
문제는 선 천안함 문제 해결, 후 6자회담 재개라는 입장을 고수하다 6자회담 재개가 지연되면 결국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북한이 바라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결과적으로 북한에 득을 가져다 주는 덫을 만드는 셈이다. 그 어이 없는 덫에 더 깊이 빠지기 전에 출구를 찾아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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