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경기 안산 경기테크노파크 내 로봇종합지원센터의 실험실. 소파, 책상, 테이블 등 실제 마루를 본 떠 만든 방 안을 로봇청소기들이 '슝-, 슝-'를 내며 종횡무진하고 있다. 천정 여기저기에서는 폐쇄회로(cc) TV가 청소기의 움직임을 녹화하고 있다.
바로 옆 방에서는 연구원들이 모니터 속 그래프를 보며 회의를 진행 중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양동원 과장은 "30분 동안 장애물과 충돌하지 않고 청소한 면적, 제거한 바닥 먼지 양, 소음, 사용시간, 자동 충전 성능 등을 측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만 국내 20만대, 세계시장 132만대(업계 추정)가 팔리고 있을 만큼 최근 몇 년 새 폭발적 인기를 끄는 로봇청소기. 하지만 제조회사나 비싸게는 200만원 넘게 주고 사는 소비자나 성능을 속 시원히 믿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지난해 12월 '가정용 청소 로봇 품질 인증 기준'을 고시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로봇 청소기 성능에 대해 '믿을 만한 잣대'를 만든 것인데 이에 따라 올 3월 이후 출시된 로봇 청소기 중 테스트를 통과할 경우 성능 인증 마크를 달고 있다.
기표원은 특히 이 인증을 국제 표준으로 제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가 표준화의 주도권을 잡으면 우리 나라 회사들은 제품 개발 단계부터 표준을 감안해서 좀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해외 시장 수출 등에서 여러 잇점을 얻는다는 게 박광호 박사의 설명. 7월 국내에서 열릴 관련 국제 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박사는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영국 다이슨, 미국 아이로봇 등 업계 강자들도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지금은 동참하고 있다"며"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표준화가 지닌 영향력은 막강하다"고 강조했다.
기표원은 나아가 청소기를 포함 로봇의 기술적 특성을 이해하기 쉽게 인간의 지능지수(IQ)와 같은 RIQ(로봇 지능지수)를 개발, 보급해 소비자가 로봇 성능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기표원은 지난해 말 로봇청소기를 포함해 국민 생활과 밀접한 50개 과제를 찾아 2012년까지 개선해 나가겠다는 '1250 생활공감 표준화 계획'을 내놓았다.
▦진공청소기마다 모양, 크기가 다른 먼지봉투 ▦TV, 비디오, 에어컨 회사, 제품, 모델 마다 제각각인 리모컨 ▦주인 손 크기에 따라 차이나는 고기 1인 분 ▦엘리베이터 버튼 위치 ▦예식장, 노인요양시설, 산후조리원의 제멋대로 서비스 등 생활 주변에서 확실한 잣대가 마련되지 않아 크고 겪어야 하는 크고 작은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이다.
현재까지 ▦전국 지자체 사이 교통카드 호환 사용 ▦장례식장 서비스 인증 ▦고추장의 매운 맛 선정 등 6건이 마무리 됐다. 올해 안으로 17가지 과제를 끝마치는 것이 기표원의 계획이다.
강갑수 기표원 표준계획과장은 "표준이 하나 정해지기 까지는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제조회사, 소비자단체, 전문가 등 이해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통한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며 "표준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얽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휴대폰 배터리 표준화가 대표적이다. 휴대폰 회사는 물론 실제 배터리를 만드는 협력업체 심지어 통신회사까지도 각자의 운명이 걸린 문제인데다 수출 주력 상품이기 때문에 해외 상황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설사 업체가 표준을 만들자고 방향에 동의해도 '잣대'를 만드는 과정 역시 쉽지 않다. 김치냉장고 용기 규격 표준화는 소비자마다 바라는 크기가 다 다르고 제조 회사가 만들 수 있는 크기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고 한다. 휴대폰 문자 입력 방식 표준화는 문자 입력 방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스마트 폰 이용자가 갑자기 늘면서 논의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조립식 온돌 표준, 고추장 맛 표준 등 다른 나라에는 사례가 없는 경우는 국제 표준화 작업까지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몇 배 더 공을 들인다.
허경 원장은 "1960년대 산업화 이후 지금껏 산업과 기술 중심의 표준을 만드는 데 집중해온 데서 본격적으로 생활 밀착형 표준을 만드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틀겠다는 것"이라며 "특히 그 동안 산업표준화 과정에서 소외됐던 서민과 장애인,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 사회적 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산=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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