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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 100년 한국일보-요미우리 공동인터뷰] (1)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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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강제병합 100년 한국일보-요미우리 공동인터뷰] (1) 정치

입력
2010.06.0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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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국일보가 일본 제휴사인 요미우리(讀賣)신문과 함께 양국의 과거사를 돌아보며 미래 협력관계를 모색하는 연쇄 인터뷰를 마련했다.

인터뷰는 정치, 경제, 문화 각 분야에서의 한일 대표급 인물을 양사 기자가 함께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그 내용은 한국일보와 요미우리가 같은 날 동시 게재한다. 첫 회 정치분야 김영삼 전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일본 총리의 인터뷰를 한국일보 창간 기념일(6월9일) 특집의 하나로 먼저 싣는다.

경제분야 한국측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CJ그룹 대표이사 회장), 일본측 요네쿠라 히로마사(米倉弘昌) 게이단렌(經團聯) 회장의 인터뷰는 17일자에, 문화분야 한국측 작가 한수산, 일본측 극작가 히라타(平田) 오리자의 인터뷰는 24일자에 게재한다.

■ 호소카와 모리히로 前 총리 "한일 경제·문화교류, 교과서 문제 등 압도할 정도로 잘 돼야"

호소카와 모리히로(72) 전 총리는 1993년 자민당 일당지배에 처음 제동을 건 연립정권을 출범시킨 뒤 3개월만에 경주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호소카와 전 총리는 자민당 정권이 금기시해온 일제 침략에 대한 사죄의 말을 주저 없이 이어갔고 그것이 새로운 한일관계의 밑거름이 됐다. 그만큼 한일관계에 대한 호소카와 전 총리의 감회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인터뷰는 최근 도쿄(東京) 분쿄(文京)구의 호소카와 가문 미술관 '에이세이(永靑)문고'에서 이뤄졌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100년간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일병합조약 이후 35년간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인에게 크나큰 고통과 굴욕을 안긴 데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식민지 지배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불행한 일이 있었지만 일본은 진지한 반성을 통해 건전하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만들어나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1993년 경주 한일 정상회담에서의 발언은 일본 정부 최고책임자로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성과 사죄를 솔직하게 말해 더 나은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소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행한 역사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 관계에서처럼 상대방 처지가 돼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쾌감이나 굴욕감을 주지 않도록 서로 신경 쓰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과거 자민당 정권에서는 '식민지 지배', '침략전쟁'이라는 용어 사용을 피했습니다. 경주 정상회담에서 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썼나요.

"회담하러 가는 비행기에서 많이 고쳐 썼습니다. 예를 들어 황거요배(皇居遙拜)라든지, 창씨개명이라든지 여러 고통을 한국인들에게 안겨준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습니다. 준비된 자료에는 없던 것을 내가 직접 넣었습니다. 추상적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용어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늘 해오던 관료적 표현으로는 생각을 전할 수 없고 한국을 정말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 구체적인 말로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에서는 매우 굴욕적이라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예상했습니다. 어려운 부분입니다. 식민지지배라든가, 침략전쟁이라든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솔직히 사죄할 부분은 사죄하는 자세가 지금부터 아시아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호소카와 발언이 무라야마 담화로 이어지며 구체화했고 일본 정부의 견해로 계승됐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성의를 보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대중문화를 통한 한일 교류가 활발해졌습니다.

"한류 드라마, 가요, 관광객 왕래 등은 매우 환영할 일입니다. 문화뿐 아니라 더욱 넓은 분야에서 더욱 심도 있는 양국의 교류를 기대합니다. 특히 정치 분야에서 상호이해가 깊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한일의원연맹 등이 있었지만 좀더 의미 있는 교류가 진행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일 교류엔 진전이 있지만 역사교과서나 독도 문제 등으로 관계가 원점으로 되돌아가버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서로 상대방의 처지가 돼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를 자극하는 것, 얼굴에 먹칠 하는 것을 되도록 피해야 합니다.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명) 문제도, 역사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케시마는 역사문제인데다 영토문제여서 해결이 정말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만이 한일관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경제, 문화 등 전체 관계가 그것을 압도할 정도로 잘 되면 되는 것입니다."

-1990년대 이후 일왕 방한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양국 사이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면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문제가 되겠지만 문화, 경제 교류가 잘 되는 가운데 슬슬 해볼까 하는 얘기가 나온다면 성사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천황 방문 요청은 좋은 일입니다. 황세자도 한국에 간 적이 없는데 전 단계로 황세자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한일관계는 나쁘지 않습니다. 정치적 결단이 중요합니다. 동아시아공동체 등을 생각하면 정치가 그런 환경 만들기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문화교류를 포함해 전체적 한일관계는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등 넓은 분야에서 교류를 쌓아가는 길밖에 愎鳴?생각합니다. 일본 정권은 오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당장은 불안정합니다. 하지만 정권교체가 있어도 한일관계가 흔들릴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국 관계가 과거에 없던 성숙한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교류도 필요합니다. 그들은 과거에 구애 받지 않으니까 특히 중요합니다. 홈스테이가 좋습니다. 나도 해마다 한 두 차례 정도 도자기를 굽기 위해 경남 산청에 가서 도예가 민영기씨 댁에 묵습니다. 온돌에 누워서 보통 사흘 정도 신세를 집니다. 거기 있으면 근처 주민들이 자연스레 모이고 교류가 생겨 납니다. 이장도 오시고 주변 농가 분들도 놀러 옵니다. 그런 교류가 중요해서 홈스테이를 권하는 것입니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3국간 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일 FTA 조기 실현은 당연히 기대합니다. 이웃끼리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FTA가 안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서로 장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경제관계를 만들어 윈윈 하자는 것이니 반드시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경우 양쪽 모두 아픔을 동반하겠지만 정치적 리더십으로 뛰어 넘어야 합니다. 냉전이 끝나고 20년이 지난 데다 국제정세도 변했고 중국의 존재감도 커졌기 때문에 새로운 대중국 관계에 대해 한국도, 일본도 잘 생각해 판단해야 합니다. 나는 중국 지도부에 늘 솔직하게 말해왔습니다. 상처 줄만한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역시 뭐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좋은 거 같습니다. 국가 관계도 개인적 인간 관계와 마찬가지입니다. 매력 있게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안함 사태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일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중국은 또 어떻게 설득해나가야 합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일련의 엄중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단순히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대응을 자제하고 있어 평가할만합니다. 국제사회가 이대로 북한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명확한 국제적 의사표시가 필요합니다."

■ 호소카와 모리히로 前 총리

▦1938년 도쿄 출생 , 죠치(上智)대 법학부 졸업

▦1971년 자민당 참의원 의원 당선

▦1983년 구마모토(熊本)현 지사 당선

▦1992년 일본신당 창당해 당 대표 취임

▦1993년 일본신당 중의원 의원 당선

첫 비자민 연립정권 총리 취임

한일정상회담서 식민지배 사죄

▦1994년 일본신당 해산 후 신진당 참여

▦1997년 신진당 탈당해 신당 프롬파이브 창당

▦1998년 프롬파이브 해산 후 민정당 참여

민주당과 합당 후 정계은퇴

▦현재 도예활동 전념, 에이세이(永靑)문고 이사장

인터뷰=김범수 한국일보 도쿄특파원

우에 이치로(宇惠一郞) 요미우리신문 편집위원

■ 호소카와 모리히로 前 총리 인터뷰 후기

1시간 남짓 인터뷰 동안 호소카와(細川) 전 일본 총리에게서 마주한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여유를 느꼈다. 그가 나고 자란 숨막힐듯한 거대도시 도쿄(東京)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규슈(九州) 중부 구마모토(熊本) 영주 가문의 18대 종손이라는 타고난 유복함 때문일까. 사람을 대할 때처럼 외교에서도 '솔직함' '배려'가 중요하다는 그의 성품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막사발이라 부르는 이도차완(井戶茶碗)을 굽기 위해 산청에 머무는 동안 이뤄진 주민과 교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주민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한일문제가 화제가 될 때도 있다고 한다.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가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제정했을 때도 마침 산청에 있었다. 주민들이 "괘씸하다"고 입을 모으자 "그 쪽에서 보면 그렇겠네요" 하고 넘어 갔단다. "과거사문제는 어렵지만 그래도 주민들과 허물 없이 지낼 수 있었다"는 그의 말에서 한일관계의 가능성을 읽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지난해 일본 민주당 정권교체의 감회가 남달랐을 게 분명하다. 한일관계는 처음 자민당 지배를 무너뜨린 호소카와 정권의 "솔직"하고 "구체적인" 사죄 덕분에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민주당 새 정권이 주목된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 김영삼 前 대통령 "일제36년 고통 말로만 해결 안돼…미래지향적 협력 많이해야"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일 관계에 대해 던진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였다. 김 전 대통령은 최근 상도동 자택에서 한국일보∙ 요미우리 신문과 공동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이 과거 36년간 저지른 죄악은 말로 해결할 수 없다"면서도 일본이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일본이 나쁜 짓을 했지만 과거 문제만 자꾸 얘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 다음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요약하면 일본이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는 토대 위에서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1910년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습니다.

"정말 불행한 역사입니다. 이런 역사를 가진 나라는 별로 없습니다."

-한국으로서는 해방 65주년을 맞습니다. 그간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식민지 시기는 매우 힘들었습니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안긴 불행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끔 일본 정치인들이 식민시대에 좋은 일을 했다는 등 이상한 얘기를 하는데 진실이 아닙니다. 한국인이 창씨개명을 원했다고 거짓말하는 일본 정치인도 있었습니다. 무례한 짓입니다. "

-일제시대에 어떤 경험을 했습니까.

"하숙을 하며 통영중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기타시마 교장이 조례 때마다 한국을 욕했습니다. 반대로 당시 일본인 교감은 대단히 훌륭했습니다. 중3년 때 노구찌라는 일본인 반장이 너무 무례해서 방공호로 끌고 가서 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 때 무기정학을 당했습니다. 나는 한국이 반드시 독립하고, 미국처럼 대통령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는 글을 하숙집에 붙여 놓고 공부했습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썩 잘된 조약은 아닙니다."

-그 조약이 한국경제 발전의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도로, 공장 몇 개 만든 것이 한국의 경제개발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은 1910년 한일 합방조약을 공식 조약이라고 봅니다.

"한국은 무효라고 봅니다. 무력으로 한 것이지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최근 한일간 교류가 늘고 있는데요.

"왕래는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

-대통령 재임 시절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만들자고 밝혔습니다.

"일본이 여러 가지 나쁜 짓을 했지만 과거 문제만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바라보고 새로운 각도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과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과거를 잊자는 말은 아닙니다. 기억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며 미래를 바라보고 가야 합니다. "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전 총리는 침략전쟁을 인정하고 창씨개명에 대해 사죄해 양국에서 호의적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호소카와 총리가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렇게까지 사과할 필요가 있었는가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나쁜 부분입니다. 사실 아무리 사죄를 해도 모자랍니다. 위안부 등 기 막힌 이야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한국인이 탄광 광부나 일본 군대로 끌려가 죽었습니다. "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의 담화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아주 옳았다고 봅니다."

-일본 총리까지 계속 사죄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납득하지 않고 있습니다.

"36년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말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

-말로만 안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은 이 이야기를 계속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잘 유지되는 것이 옳습니다. 협력이 동북아,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독도와 교과서 문제가 나오면 항상 양국간 갈등이 생깁니다.

"영토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물론 일본이 한국에 양보하면 좋겠지요.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으로 어디까지나 우리 땅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억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내 재임 중에 독도에 큰 배가 접안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교과서 문제에서는 일본이 진실을 갖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일본이 박해와 침략을 부정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향후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협력해야 합니까.

"일본은 과거 고통을 준 데 대한 잘못을 정말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서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

-지금은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까.

"양국 지도자들이 서로 방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1년에 한번쯤 일본 와세다 대학을 찾아 강연합니다. "

-1993,94년 1차 북한 핵 위기 당시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북한이 핵을 절대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하려 했습니다. 동해안에 군함 33척과 항공모함 2척이 와 있었습니다. 나는 절대 공격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북을 때리면 우리나라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제2의 6ㆍ25가 발발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처음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서울에서 나를 만난 뒤 방북했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북한 대동강에서 김일성과 뱃놀이를 했던 얘기 등을 전해줬습니다.

김일성이 굉장히 겁에 질려 있었는데, 심각한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카터 전 대통령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이라고 말하자 김일성은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됐습니다.

1994년 7월25일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기로 합의했지만 김일성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당시 만났다면 김일성이 상당한 양보를 했을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을 주고 만난 것과는 전혀 다른 만남이 됐을 것입니다."

-천안함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요.

"한국과 미국이 확실하게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공동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북한을 제어하고, 남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북한은 섣불리 전쟁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천안함 사태에서 일본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일본에서 이북으로 보내는 돈을 차단해야 합니다."

-북한은 천안함 사태 이후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는 원래 그렇습니다. 거기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과 지나치게 대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많은데요.

"물론 북한과 전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터뷰=우에 이치로 요미우리신문 편집위원

김광덕 한국일보 정치부장

정리=고성호 기자

■ 김영삼 前대통령 인터뷰 후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인터뷰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과거를 기억하고 새로운 일한관계를 세워나가자'는 것. 일본이 미래를 강조함으로써 과거를 흘려보내는 자세를 보일 때마다 오히려 한국을 자극, 갈등을 촉발시킨 '부(負)의 구도'가 계속돼 왔기 때문에 이는 향후 양국관계의 한 원칙이 될 수 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논리대로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일한관계가 중요하다는 목적성을 상호 인식하는 한, 양국은 여러 갈등을 극복할 수 있으며 당연히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1965년 일한 기본조약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견해에 대해선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민주화 대통령으로서는 '박정희 정권을 지탱하는데 일조한 일본의 자금공여'를 용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국민들이 그 후의 경제발전과 양국 우호관계를 그런 식으로 인식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결코 "일본이 한국에 좋은 일을 했다"고 주장하자는 게 아니라 일한 기본조약이 양국 간 협력방식에서 하나의 모델이 된 것이 아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서울에서 특파원을 지낸 나는 지금처럼 많은 양국 국민들이 왕래하는 시대가 올 줄 몰랐다. 두 나라 국민들의 교류로 만들어진 '명확한 신뢰관계'가 향후 일한관계를 공고히 할 것으로 믿고 있다.

우에 이치로 요미우리 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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