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세계청소년대회(1983년)에서 멕시코 호주 우루과이 등을 이기고 4강에 올랐을 때, 방송은 주야장창 감격이고 어른들은 한없이 자랑스러워했다. 우리들 또한 그 쾌거를 찬양하지 않으면 왕따 되는 분위기였다.
올림픽 개최를 예정했고, 잡다한 대회서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우리나라가, 듣지도 못한 나라 셋을 이기고 겨우 4등 한 걸 갖고 왜들 난리야. 태어나서 4등하고 칭찬 받는 것은 처음 봤네. 이게 솔직한 마음이었지만, 겁나서 누구에게도 속내를 보일 수가 없었다.
호주는 한국이 보릿고개에서 헤매고 있던 시절에 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으며, 중남미 국가들이 축구 하나는 잘 한다는 것을 안 뒤에야, 그때 4등이 기적의 쾌거였음을 되새길 수 있었다.
멕시코월드컵(1986년) 때, 한국이 32년 만에 월드컵본선에 진출하다니! 믿기 힘들었다. 축구를 애국과 동일시하며, 축구에 목숨 거는 사람이 모래알처럼 많은 나라가 어찌해서? 이후로 한국은 월드컵본선에 빠짐없이 진출했다.
본선 32개국으로 늘고 따라서 아시아 배정 티켓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7회 연속으로 본선 진출은―삼십여 년 염원만 하다가 생애를 다 보낸 어른들을 생각하면 더더욱―경이적인 일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당연한 바가 돼버렸다. 우리나라가 국제축구연맹(FIFA)에 가입한 208개국이 펼치는 예선에서 32개국 안에 드는 건 타고난 '국격'과도 같다.
대신 16강에 대한 염원이 생겼다. 1986년부터 24년간 죽. 월드컵 때마다 그 얼마나 간절히 16강을 갈구했던가. 8강도 아니고 16강을 그토록 갈망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2002년에 16강을 달성한 적이 있다. 겨우 16강이 뭔가. 8강을 넘어 4강까지 갔었다. 딱 부러지게 4등으로 마감했지만, 4등은 온 나라를 열광의 도가니 속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래서 원정 16강은 더욱 간절해졌다. 제 집에서 4등도 하는 실력이 밖에 나가서는 맥을 못 추는 난감함을 덮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16강 안에는 들어야 한다.
한국 축구사는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1등만 아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었음을. 윗세대는 본선 16개국 24개국 안에 들기를 32년간이나 염원했고, 7연속 월드컵본선 동안에는 16강 안에 들기만을 염원했고, 4등이 얼마나 위대한 성취인지 두 번이나 경험했고, 설령 16등 안에 들지 못해도 '최선을 다했다면' 늘 그래왔듯이 박수를 보낼 마음의 준비가 돼있으니.
한국일보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외부필진 2명의 맛깔 나는 칼럼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걸쭉한 입담에 마르지 않는 이야기 샘을 가진 소설가로 등을 쓴 김종광씨와 '축구 유니폼을 입어야 소설이 잘 써진다'는 축구 마니아로 등을 펴낸 이기호씨가 바라본, 월드컵의 또 다른 시선을 독자 여러분에게 생생히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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