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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대토론회] "천안함 사태, MB정부 기조 탓 아니어도 대비 못한 책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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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대토론회] "천안함 사태, MB정부 기조 탓 아니어도 대비 못한 책임 있어"

입력
2010.06.0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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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안병준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남북관계 대토론 기획의 첫 토론은 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남북관계 전반을 다뤘다. 대담자인 안병준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각각 강단과 정책 현장에서 남북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해온 전문가답게 날카롭게 남북관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깊이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중도보수와 중도 진보성향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사안에 따라 견해를 같이하면서도 천안함 사태의 배경과 정부의 '5∙24 조치'의 효과 등에 대해서는 양보 없는 논리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간 긴장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가운데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습니다. 여전히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해서인데요, 6∙25를 직접 겪은 두 분의 소회는 어떻습니까.

안병준 KDI 초빙교수= 6∙25가 났을 때 중학생이었습니다. 벌써 60년이 지나 소련과 동구공산체제가 무너지고 냉전이 끝났는데도 한반도만 냉전의 빙하로 남아있습니다. 공산체제는 다 무너졌는데 북한만 변하지 않고 있어요. 천안함 사건은 6∙25 이후 남한에 대한 최대의 군사적 공격입니다. 한국전쟁 60년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은 한반도의 현실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당시 여섯 살 이었습니다. 폭격을 피해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갔다가, 심각한 동족상잔을 목격했습니다. 밤에는 빨치산이 내려오고 낮에는 국군이나 경찰이 와서 빨치산을 도운 부역자를 색출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이념 때문인지도 몰랐습니다. 안 교수님이 한반도만 여전히 냉전시대라고 했는데 동의합니다.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기 위해 새로운 자세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냉전이 지속되는 원인을 무엇이라고 봅니까.

안= 저는 북한 내부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을 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개혁ㆍ개방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한 이유는 그런 특성으로 체제유지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딜레마죠. 리비아가 핵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경쟁 상대가 없었던 측면이 큽니다. 반면 남한과 체제 경쟁을 벌이는 북한은 핵이 생존 수단입니다. 북한 체제는 기본적으로 국제정치 무대에 순응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정= 북한이 아직도 냉전을 즐기려는 것인지, 냉전 해체라는 국제정치적 환경이 동북아에서만큼은 전개되지 못한 탓인지 의문이 있습니다. 저는 후자라고 봅니다. 노태우 정부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초에 한∙소, 한∙중 수교를 체결하면서 미국, 일본에도 대북수교를 권장했습니다. 북한은 92년에는 미국에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반대급부로 수교를 맺자고 직접 제안했는데, 미국의 아버지 부시 정부가 거절했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유엔 동시가입까지 해놓고도 흡수통일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6ㆍ15 남북정상회담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남북이 극단 대치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6ㆍ15 공동선언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정=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김대중 전 대통령 한 분의 개인적인 철학이나 정견의 소산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없던 90년대 초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미국, 일본에 대북 수교를 주선했더라면 훨씬 안정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관리했을 것입니다. 94년 7월 예정됐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의 정상회담이 성사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그래서 듭니다. 북한은 당시 남쪽으로부터 체제를 보장 받으면 얼마든지 개방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우리도 돕겠다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에 화해협력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사되지 못했고, 북한은 95~98년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남한의 지원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꾼 시점입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처럼 북한의 필요와 만나면서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안= 2000년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로 큰 의미가 있고,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건 사실입니다. 다만 정상회담의 의도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남한은 경제협력, 북한은 안보문제를 갖고 회담에 임했는데, 북측은 역시 자기 체제를 방어하기 위한 별鳧?짙었습니다. 나아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해 국제사회에 복귀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시도가 잘 먹혀 들지 않자, 체제 수호 방향으로 선회한 것입니다. 북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행동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핵 포기가 전제돼야 지원이 가능하다는 비핵개방 3000 정책을 내세우면서 대북정책이 강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안함 사태는 이런 강경기조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북한의 천안함 도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안= 핵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잠수정으로 공격해도 남한이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북한의 군사적 역량은 도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좋은 근거 자료가 됩니다. 서방 국가들은 북한이 8~1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눈치입니다. 저는 북한의 핵무장은 한국에 전략적 악몽이 될 수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 눈 앞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가 계속된다면 북한이 추가 도발을 안 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정= 유사한 도발이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기 때문에 북한 소행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부의 사고 원인 설명이 너무 조잡해 신뢰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럼 북한이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일부분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나 한미 동맹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과거 미국이 중동 문제로 발이 묶였을 때 무력도발을 감행한 전례가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때 북측이 50발의 포탄을 발사했는데 우리는 5,050발로 대응했고, 북한은 보복을 공언했습니다. 우리가 응사한 포탄이 공중에서 산탄 효과를 일으켜 북측의 피해가 엄청났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북이 도발하면 무조건 결정적 타격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수사(修辭)에 그쳐야지 실제로 상대방이 보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끌고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안=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북한이 어떤 의도를 갖고 도발했느냐보다 행동 자체에 우려를 표합니다. 하나는 대청해전 보복인데, 북한이 이런 식의 행동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향후 득실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도발을 감행했다면 상당히 우려됩니다. 북한의 권력계승과 연관돼 있다는 해석도 있는데,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사실이라면 큰 문제입니다. 여하튼 어떤 보복적 행동이라 하더라도 북한 내부 문제가 원인을 제공했다면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행동과 다른 패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을 중시해야 합니다.

정= 북한이 김정은 후계체제를 굳히기 위해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모든 정책, 행동을 후계문제에 빗대 평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한가지 살펴야 할 부분은 북핵 6자회담 재개를 대비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협상 우선순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충격 요법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이 국지전, 전면전으로 갈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입니다. 실제 미국은 북한이 충격요법을 쓸 때 처음에는 화를 내고 강력한 제재 분위기를 조성하다가도 결국엔 북한과의 비공개 접촉을 시작으로 대화하는 수순을 밟아왔습니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이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불러와 천안함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안=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대결 일변도로 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정책의 전제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경제지원은 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으로 정부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고의로 도발을 유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지난해 대청해전이 결정적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북한은 대청해전 대패 직후 보복을 공언했습니다. 그밖에 북한 내부에서 이 시점에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1200톤급 함정을 두동강 내고 46명의 인명을 수장시키고도 크게 손해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그들에게 있었을 겁니다.

정= 나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천안함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책임 문제를 비켜갈 수 없는 대목은 분명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을 북한에 대한 환상, 퍼주기로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집권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절대 이런 일을 당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북한에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면 북한이 무슨 일이라도 벌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안보태세를 철저히 강화했어야 합니다. 북한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도 준비를 안 했다면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력한 대북제재 방침을 천명했습니다. 북한으로의 현금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남북간 교역도 중단했습니다. 정부의 조치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안= 저는 적절하다고 판단됩니다. 응징이라기보다 다시는 이런 도발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한 억지력 확보의 측면이 강합니다. 과거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 발언에서 보듯 지금 우리가 군사적 행동을 취하면 전쟁이 날 수도 있습니다. 무력대응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재가 무엇이냐를 따져 본 것입니다. 그것도 무조건 문을 닫는다는 게 아닙니다. 개성공단과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은 제외했고, 김정일을 직접 거론하지 않아 대화의 여지도 남겨 파국은 막으려는 신중함이 엿보입니다.

정= '북한의 행위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버려 둘 수 없다'는 현 정부의 스탠스를 감안하면, 대북 제재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철통 안보를 통해 '피스 키핑(peace keeping)'을 하든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피스 메이킹(peace making)'을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두 가지 방안을 적절히 병행해야 하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제재 효과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경협 중단에 따른 북한의 손해는 2,3억 달러로 추정되는데 북한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지 의문입니다. 반면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외평채 이자율이 급상승하고 외국인 투자가 썰물처럼 빠져 나갔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손해는 열 배, 스무 배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안= '코리아 리스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환율이 오르고 했지만 그 다음날 바로 내렸고, 한국은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다고 생각합니다.

안병준 교수

"中이 우리편이라는 인식은 환상… 남북 가교役 유도해야

6者, 北의 국제사회 복귀 유일한 해법불구 핵해결은 요원"

정세현 전 장관

"北이 개방·핵포기 나설 수밖에 없는 내외 정세 조성이 긴요

北은 사실상 왕조 국가… 권력 세습 관련 급변사태 없을 것"

-천안함 사태 대처 과정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크게 부각됐습니다.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데 중국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 아닌가요.

안= 북핵문제뿐 아니라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중국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중국은 우리편이다'라는 인식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자신이 만난 국가 지도자들 가운데 중국 인사들이 가장 냉혈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중국은 최우선 순위를 자국의 경제발전 및 안정에 두고 있습니다. 매년 200만 명 이상 신규고용을 창출해야 하고, 지도력과 책임이 따르는 G2(미국과 함께 2대 강대국)라는 지칭에 대해서도 "개발도상국인데 무슨 G2인가"라고 거부합니다. 때문에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원치 않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천안함 사태를 다루려고 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중국은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정도라면 모를까 신규 대북 결의안은 거부할 것 같습니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유엔 안보리 1874호 대북 제재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지금도 도발 행위를 못하게끔 북한에 은밀하게 압력을 가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대중국 무역에서 흑자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말고, 북한의 도발이 중국에도 부담이라는 걸 강조하면서도 중국이 남북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게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정= 국내에선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대해 과대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대국주의적 발상입니다. 실제 북ㆍ중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중국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 시절부터 평화 5원칙을 확립해 타국 문제에 간섭을 안 하려 합니다. 중국은 전략적 불이익을 피하려고 할 뿐, 북한을 이용해 이득을 얻으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중국의 기본 입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제재 동참 설득이라는 난데 없는 말이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1874호도 중국이 동의해줬지만 결의안 통과 뒤 중국은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은 계속하겠다고 미국에 통보했습니다. 굳이 중국을 활용하고 싶다면 2005년 6자회담 9ㆍ19공동성명 때처럼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역할 주문을 북한 설득에 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천안함 사태로 당분간 6자회담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심지어 6자회담 무용론도 들립니다.

안= 솔직히 현 상황에 6자회담 재개는 어렵습니다. 최소한 북한이 사과를 하고 대남 강경 행보를 누그러뜨려?6자회담을 시작할 수 있는 명분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천안함 위기를 극복하고 북한을 국제사회 무대로 복귀시키는 유일한 해법은 6자회담뿐입니다. 남북관계에서 북한과의 소통 창구를 열어두는 일이 중요하듯, 국제 무대에서도 북한을 아예 내치는 것은 위험합니다. 단,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회담이 다시 열리더라도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에 진력할 것으로 보여 지나친 기대는 금물입니다. 그저 북한이 군사도발 정책을 폐기하고 대화와 협력이라는 평화적인 외교 수단으로 전환하는 데에 의미를 둬야 합니다.

정= 미국은 천안함 문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우리 정부의 태도가 워낙 강경한 탓에 6자회담 카드를 선뜻 꺼내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엔에서 천안함 문제를 매듭지어 준다면, 중국이 회담 재개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일 것입니다. 그 시기는 7,8월로 넘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의문은 정부가 6자회담 재개보다 천안함 사태에만 매달리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입니다. 북한은 과거 6자회담 협상장에서 몸값을 높이기 위해 휴지기간 동안 핵 능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핵실험 등 무력 시위를 한 뒤에 회담에 임합니다. 북한은 특히 경제제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번에도 정부가 미국에 대북 금융제재를 부탁하는 것 같은데 미국은 2005년 BDA(방코델타아시아) 대북 제재가 몰고 온 실패의 추억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의 1차 핵실험은 BDA 제재 탓이었습니다. 북한은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압박을 하면 더욱 세게 튑니다. 외교 당국자들도 모를 리가 없는데, 국내 정치용으로 이 방식을 제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외교부가 대통령 보고용으로 그런 걸 만들고 그러는데, 대통령을 망치는 것입니다.

-6자회담 무용론은 북한은 어차피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 체제가 조만간 무너질지 모른다는 북한 붕괴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 붕괴를 가정한 급변사태 계획도 노출됐습니다. 이런 것들이 북한을 자극해 사태를 악화시키는 측면은 없습니까.

안= 급변사태 계획은 북한을 자극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실제 북한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독일 통일을 누가 예상 했습니까. 다만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조용히 추진해야지 떠벌릴 필요는 없습니다. 또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오로지 국가안보 차원에서 준비하면 됩니다.

정= 정부는 2008년 가을 김정일의 건강 이상 징후가 포착되자 '작전계획 5029'를 공공연히 거론했습니다. 유사시 비상 조치가 나라마다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당연히 불문에 부쳐야 하고, 1급비밀은 존재 자체도 비밀로 엄수돼야 합니다. 또 북한 체제는 한 지도자의 생물학적 생명이 끝났다고 해서 즉시 붕괴로 이어지거나 권력투쟁이 심화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북한은 사실상 왕조 국가입니다. 김정일로의 권력 세습은 오랜 수련기간이 필요했지만, 2대 세습을 통해 북한의 특수한 정치문화가 구축됐기 때문에 차기 지도자는 별도의 사전 준비 작업이 없어도 주민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권력 승계 시스템이 이미 완성된 것입니다. 후계 문제 때문에 북한 당국이 일을 벌일 이유도 없는데 정부가 먼저 호들갑을 떨어 북한을 자극해서는 안됩니다.

-6ㆍ2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북풍'의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 과거 선거와 비교해 국민 의식이 크게 성숙했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깊어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북풍이 정치의 소재로 악용됐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이 국내 정치에 매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정치권이 북풍을 활용해 보수층 결집을 의도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국민 수준이 그 정도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가령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을 발표했음에도 여당이 오히려 패했습니다. 꼭 북풍이냐 아니냐,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은 '우리를 우습게 본다'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됐습니다. 정치권도 국민 의식이 어느 수준에 와 있는 지 공부 좀 해야 합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습니다.

안=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체제를 굳건히 유지하면서 미국, 남한으로부터 얻어낼 것은 얻어내는 패턴입니다. 그래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게 중요합니다. 북한이 처해 있는 상황과 군사력,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관계 등을 두루 살펴 우리의 대응책을 모색하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정= 핵포기를 간청하는 식은 안되며, 개혁ㆍ개방 하기를 넋 놓고 기다려서도 안됩니다. 북한이 그렇게 되도록, 될 수 밖에 없도록 내외부의 정세를 조성하고 정책을 짜야 합求? 정부의 역할은 바로 그것입니다. 북한의 핵이나 개혁ㆍ개방 문제가 불거지면 으레 체제 붕괴를 우려해 절대 개혁을 못할 거라거나, 시스템 보다는 김정일 한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섣부른 판단이 나옵니다. 이렇게 몰아가면 정책이라는 게 필요 없습니다.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문제는 결국 우리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아무리 말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이번처럼 뭔가 선거를 통한 각성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1945년 만주 출생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71~82년 서울대 국제정치학 석ㆍ박사

1977년 통일원 공산권연구관실 보좌관

1986년 세종연구소 정치외교연구실 실장

1996년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1998년 통일부 차관

1998~2001년 명지대, 경희대 객원교수

2001~2002년 국가정보원장 통일특별보좌관

2002~2004년 제29, 30대 통일부 장관

2004~2007년 이화여대 석좌교수

2007~2010년 경남대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

2007~현재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 안병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1936년 경남 밀양 출생

1962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72년 미 콜럼비아대 정치학 박사

1972~78년 미 웨스턴 일리노이대 부교수

1978~2001년 연세대 교수, 사회과학대학장, 교무처장

1981~82년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 초빙교수

1988~89년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

1996~97년 미 조지워싱턴대 초빙교수

1997~현재 서울국제포럼 회원

2000~현재 대한민국학술회 회원

2002~2004년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초빙교수

2004~현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2006~2009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

사회= 이계성 논설위원

정리=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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