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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봉 '달려라 그루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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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봉 '달려라 그루쉐'

입력
2010.06.0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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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브레히트는 진화 중이다. 예술은 사회변혁을 위한 과학적 인식의 지렛대로 복무해야 한다고 합의되던 때, 그의 서사극 이론은 사회적 모순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듬직한 수단이었다. 그로부터 적어도 한 세대는 격했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이 현재적으로 갖는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각색한 극단 봉의 '달려라 그루쉐'에서 갖게 된다.

극단 대표이자 연출자 류태호씨가 배우들을 상대로 펼쳐오고 있는 연기술의 성과가 전편에 흐른다. 가끔 영화를 통해서도 개성적 연기를 각인시켜 온 그는 10년째 이 작품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작품은 전쟁 때 피난 갔던 어느 귀족 부인이 종전 후 돌아와서 맡겨둔 아이를 되찾으려는 이야기를 줄기로 한다. 키운 정이 한껏 든 평민 아낙 그루쉐는 도저히 아이를 돌려줄 수 없다고 버티고, 현명한 판관은 아이를 잡아당겨 나눈 뒤 가지라고 명한다. 아이가 다칠까봐 얼른 팔을 놓아준 아낙에게 친권이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서사극에서 관객이 극 속에 빠져드는 몰아 혹은 감정이입의 경지는 최대의 적이다. 이를테면 가장 반(反)스타주의적인 연극이다. 올바른 인식을 강조하다 보니 무대의 흡인력이 엷어질 수도 있다. 그 함정을 메운 것이 이 극단 특유의 피지컬 시어터, 즉 길들여진 육체 언어다. '연습된 혼돈'이 객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다. 류씨는 배우들에게 "연극이라기보다는 스포츠로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소란의 풍경에서 관능적 무용까지 무대의 사건은 먼저 배우들이 연습실에서 경험한 카타르시스가 재현되는 것이고, 그 밀도는 객석에 그대로 전이된다.

공감은 현재 한국의 상황을 무대가 놓치지 않는 데서도 나온다. 기상천외의 판결로 부자의 것을 백성에게 나눠주도록 하는 판사의 모습, 역시 짧게 삽입된 칠순 부부의 이혼 법정 대목은 요즘의 세태를 곱씹어보게 만든다.

이 작품은 연우무대라는 독특한 연극집단의 미학적ㆍ사회적 발언이기도 하다. 연출자 류씨가 "김광림, 이상우, 최형인, 김석만씨 등 연우 선배들의 일부분이 다 통합된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대로다. 7월 4일까지, 나온씨어터.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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