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살풀이 명인 조갑녀씨는 10대에 기예를 익힌 남원 권번(卷番)을 "부자들이 세운 훌륭한 종합예술학교"로 기억했다. 권번이 양반의 전유물이던 풍류 음악은 물론 승무, 활쏘기, 시조창 등을 전수한 사립 교육기관이었다는 증언이다. 권번을 중심으로 일반 속악과 거리를 두고 발전된 선비들의 풍류가 현대인과 친숙한 이야기 구조 속으로 들어온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10, 11일 오후 7시30분 북촌창우극장에서 여는 제3회 대한민국정가(正歌)축제다. 엄격한 사설을 노래하는 정가 가객이 판소리에 버금가는 이야기꾼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대 연희자들의 친화력이 무기다.
해방기의 여성 신민요 가수 선우일선을 그린 '꽃을 잡고-선우일선'은 평양 권번이 낳았던 당대의 스타 이야기다. 선우일선이 정가 최고의 예인이 되고픈 마음으로 불렀던 가사 '매화가'와 '상사별곡', 여창 지름시조 '청조야' 등이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김영기씨의 공연으로 펼쳐진다.
음악회 형식의 무대 '북촌율방–다섯 남자 이야기'는 정가를 노래극 양식으로 펼친다. 한량, 실연남, 벼슬아치 등 개성적 인물들이 '밀양아리랑'과 '꽃을 잡고' 등 민요풍의 선율로 흥을 돋운다. 정가 버전의 소리극으로 볼 수 있는 무대는 정가의 새 가능성과 연결돼 있다. 전북 무형문화재 제41호 남창가곡 이수자 이강삼,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가사 이수자 김희성씨 등 5명의 가객이 함께 만드는 무대다. 경북궁 인근 북촌에 살던 사대부나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사랑방인 율방(律房)을 무대로 사설 시조, 가곡, 가사 등을 아우른 정가 아카펠라가 이채롭다,
국악 평론가 윤중강씨는 "이번 공연은 정가가 사상 최초로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자리"라며 "정가의 뉴 제너레이션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02)580-3276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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