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경기 화성시 롤링힐스에서 열린 현대ㆍ기아차 공정거래협약식. 1차 협력사 A사 사장 김모씨는 연매출 3,000억원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A사는 대기업에게는 '을'이지만 또 다른 2차 협력업체에게는'갑'이다. 김 사장은 '갑'과 '을'의 구조가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폐해를 솔직히 토로했다.
김 사장은 "과거에는 원청업체가 납품단가를 인하하라며 반발하면서도 우리(1차 업체)도 똑같이 2차 업체에게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납품 가격에 대해 논의 구조가 만들어지고 하청업체의 기술 개발도 원청업체가 도와주고 있다"며 "양쪽이 다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서로 절충점을 찾아가는 것이 상생 아니겠냐"고 웃었다.
현대ㆍ기아차가 2,700개에 달하는 부품 협력사에 대해 1조1,000여억원의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특히 상생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기존 지원 대상이었던 1차 협력사뿐 아니라 1차 협력사로부터 하청을 받는 2차, 3차 협력사에 대한 지원과 관행 개선에 직접 팔을 걷어 부치기로 했다.
8일 협약식에는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서영종 기아차 사장, 정석수 현대모비스 부회장 등 현대ㆍ기아차 8개 계열사 대표가 참석했다. 협력사 대표 200여명도 자리를 함께 했다.
갑과 을 그리고 관이 기업의 상생 생태계를 만들자는 자리였으나 긴장감이 흘렀다. 도요타의 대량 리콜 사태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도요타가 하청 업체에게 무리하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다 보니 품질이 저하, 대량 리콜 사태를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한 해답은 대기업과 협력사 간의 '상생 생태계'를 만드는 것.
이날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단호하게 대기업과 하청업체가 상생 구조를 만들어야 경쟁력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청 업체와 수직 종속 구조 속에서 대기업의 일방적으로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며 "서로 상생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부회장은 "2, 3차 협력회사를 위한 3,000억원 규모의 저리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해 상생구조를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규모가 큰 1차 업체뿐 아니라 사정이 더 어려운 2차, 3차 업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 먹이 사슬 구조를 상생 사슬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담 부서까지 마련했다. 현대ㆍ기아차 기술연구소, 구매 및 품질본부와 1차 협력사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이 TF가 2차 협력사를 지원하고 기술 개발을 돕기로 했다. 기술력과 품질관리에 취약한 뿌리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협력사 신원사원을 상대로 한 기술학교도 운영된다.
하청 업체에게 당장 급한 것은 자금 순환. 이를 위해 직접 출연 기금을 기존 580억원에서 820억원으로 확대하고 납품대금 100%를 현금 결제하기로 했다. 또 1,000억원 규모의 운영자금 신용대출, 2,640억원 규모의 보증프로그램도 가동에 들어간다. 이날 협약식이 공수표로 끝나지 않도록 현장 감독도 강화한다. 현대ㆍ기아차가 직접 2차 협력사를 방문, 1차 협력사가 협약 내용을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송태희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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