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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산 채로 캔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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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산 채로 캔 칼

입력
2010.06.0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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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군 서대산 상곡2리 산골 비집고 들어갔더니

바람 빠진 농구공 출입구길 막고

맹추위가 마중나와 있더군요.

골짜기에는 겨울이 산벚꽃 꽃망울을 하늘 깊이 묻어두었더군요.

겨울이 다시 왔더군요.

곡기 감춘 구황(救荒)의 마을은

빈집 문짝들 바람 속에서 너덜거리고

산속에는 강풍(强風)만 살더군요.

그 강풍 주먹도 좀 맞대보고

힘 좀 써보다가 엄두가 나지 않아 추위 속으로 귀순해버리고 싶었지만

참 강골이더군요.

때가죽나무 잎 두른 밀전병과 동동주도 없는

추위길을 배곯며 바람과 쏘다녔습니다.

서대산 산벚꽃

꽃망울도 비치지 않는 산골 얼음장에

빙화(氷花) 군락지만 모여 있더군요.

그 쇠기운 나는 빙화 한 송이

산 채로 캐냈습니다.

그때 캐낸

추위 한 뿌리는

내 서재 창가

설월(雪月)의 화분에 몰래 옮겨 심어두었습니다

요즘 가끔 나는 기다립니다

화분 흙에서 출토될 은검(銀劍)

산 채로 캔 칼 하나를.

● 지난 1월 20일의 안개가 생각나네요. 그 날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갔더니 온 동네가 온천장 같은 느낌이랄까. 분명히 겨울의 한 복판이었는데도 땅에서 무럭무럭 습기가 솟구쳐 올라 바로 몇 걸음 앞이 보이지 않았지요. 안개를 헤치며 어딘가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이렇게 하루 종일 안개가 낀 날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날이 무더워지니 그 때 일이 떠오르네요. 어쩌면 그 때 나는 여름을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겨울에는 겨울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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