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 지방선거의 후폭풍이 대단하다. 정부와 여당은 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당황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당 쇄신과 함께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물갈이를 거론하고 있으며, 뜻밖의 승리로 표정 관리에 들어간 민주당도 앞으로의 정국 주도 방안과 야권의 통합과 연대에 대해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각 정당과 정치 세력들이 승리를 자축하고 패배에 침통해 하면서 요란스러운 공방을 펼치고 있지만 진정한 승리자는 말없는 유권자다.
균형과 중심을 보여 준 유권자
선거는 진정 민주주의의 꽃이다. 꽃은 화려하게 피어 시선을 끄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꽃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씨앗은 땅에 떨어져 또 다시 굳건한 민주주의를 싹 틔운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면 민주정치는 공고하게 된다.
민주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기준이 몇 번이나 선거를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 이후 다섯 차례 행정부의 수장을 바꿨고 총선과 지방선거를 통해 의회권력과 지방권력을 수시로 교체했다. 모두 유권자의 힘이다. 유권자의 균형감각과 중심 잡기의 결과다. 유권자의 힘을 무시하고 독단과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면 민심은 조용한 반란을 꾀한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이명박 정부의 독단에 대한 민심의 경고이고, 나태해진 한나라당에 대한 유권자의 질타이며 견제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언론 매체들이 한나라당의 압승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위축되어 보였던 유권자들은 침묵의 소용돌이(spiral of silence)에서 힘차게 벗어나 소신 있게 표를 던졌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좌우의 극단적 목소리가 거칠어도 유권자들은 중심을 잃지 않았다. 우리 국민 특유의 역동성과 더불어 균형감각도 갖추고 중심 잡기에도 성공하고 있으니 이제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선거 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재방송하는 일상적 당 쇄신 논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물 몇 사람 바꾸는 정도로는 답이 안 된다. 민심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이고, 어떠한 방향으로 정치를 이끌어가야 민심에 부응할 수 있을지 통렬히 고민해야 한다.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 발휘와 정책 정당체계의 정립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대안이다. 우선 리더십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 뿐 아니라 정당과 의회, 관료사회의 리더십은 아직도 권위주의적이며 배타적이다. 소통보다는 지시에 익숙하고 통합보다는 일방통행의 독단이 몸에 배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체질 개선에 들어가야 한다.
선거의 쟁점이었던 4대강 사업과 세종시 수정안 추진 문제가 벽에 부딪힌 근본 원인은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 부재에 있다. 국민과의 소통은 물론, 정당 내의 소통, 정당과 정당, 정당과 국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행정부와 국회의 소통 등 현대 정치사회에는 무수한 소통의 채널이 존재한다. 정치 행위자와 이슈의 다양성과 더불어 정보통신기술 발전에 따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다양화에 걸맞은 리더십 발휘가 절실하다.
통합·소통 리더십으로 답해야
또한 우리나라 정치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는 보혁구도의 정당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6ㆍ2 지방선거의 결과에 비추어 보면 정책과 이념 지향에 따른 정당구도 재편의 가능성이 보인다. 진보정권 10년,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뿌리내린 진보 정치세력의 조용한 정치권 재진입 또한 유권자의 균형감각과 중심 잡기의 결과이며, 이를 토대로 지역정당체계를 극복하여 선진적 정책정당체계 수립이 가능하다.
유권자의 균형감각과 중심 잡기가,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 그리고 정책 정당체계와 맞물려 나갈 때 우리나라의 민주정치는 공고화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희망이 보인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정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