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치 이념적 성향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한국인 10명 가운데 4명꼴로 중도라고 답했다. 보수와 진보는 각각 3명으로 중도보다 적었다. 사회통합위원회가 올해 초 전국 성인 남녀 2,012명을 대상으로 국민의식을 조사한 결과, 보수는 29.7%, 중도는 40.3%, 진보는 30.0%로 나타났다. 중도가 보수와 진보보다 높은 단봉(單峯)형이다. 이는 26.4%(보수)-49.3%(중도)-22.7%(진보)로 나타난 지난해 12월 한국일보의 조사결과와 비교할 때 중도가 다소 줄긴 했지만 형태는 비슷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중도보다 보수와 진보가 월등히 많아 4-2-4의 쌍봉(雙峯)형을 이뤘다. 한 예로 '북한은 우리의 동반자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42.9%,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38.2%였다. '보통이다'는 18.9%였다.
한국방송(KBS)이 2008년 8월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서도 '집회와 시위로 사회질서가 위협받더라도 경찰이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동성애도 개인의 선택이므로 인정해야 한다' 등의 문항에 대해 보수적인 답(그렇지 않다)과 진보적인 답(그렇다)이 30~40%를 차지한 반면, 중도(보통이다)는 20% 안팎에 머물렀다.
노대명 사회통합위원회 전문위원은 이처럼 자신을 중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개별 사안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세대간 경험 차이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노 위원은 "대북관에 있어서는 6ㆍ25 전쟁을 겪은 고령층과 경험하지 못한 젊은층이,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있어서는 산업화의 경험 유무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갈린다"고 설명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아직 확고하게 정립되지 않은 것을 주된 이유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구사회에서는 정치 이념이 오래 축적돼 보수와 진보가 각각 낙태, 총기 등 사회 문제를 보는 시각 차에 따라 명확하게 갈리지만 한국은 단기간에 발전해 아직 개념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 보수-중도-진보의 구도가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로, 아직 2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60년대 발전(진보)을 이룬 사람들이 보수파인 점을 상기시키면서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 성향을 보이는 등 아직 정치적인 이념과 개별 문제를 보는 시각이 혼재한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학과 교수도 "서구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특정 정당과 연계돼 경계가 확실하지만 우리는 어떤 신문을 보는가의 수준으로 나뉘기 때문에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보수-진보 간 극한 대립은 사회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에는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 했다. 박 교수는 "양 진영이 헐뜯기로 일관한다면 우리 공동체는 해체의 위기에 몰릴 수밖에 없다"면서 "서로에 대한 배타성을 존재 이유로 삼아왔던 여야 정치권이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만큼 화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특히 계층 갈등에 대해 극빈층이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책 마련을 정부에 주문했다. 예컨대, 은퇴한 중년층을 극빈층 아이들의 멘토(후견인)로 임명해 일정 보수를 지급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게 해, 이를 통해 사회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돌아설 수 있는 실업자, 극빈층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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