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 길 찾고… 소통에서 답 얻어 "도약"
업황(業況)의 부침이 심하고 한 순간의 실수로 회사의 운명이 갈리는 경우가 많은 건설업계의 특성 때문일까. 우리나라 경제에서 15~20% 가량의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업계 '파워리더'는 경륜 높은 50대 후반 혹은 60대 초반의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시공능력 순위가 높은 주요 13개 건설업체 최고경영자(CEO) 모두 55세 이상이다.
통계적 연관성은 없으나 13명 CEO 가운데 절반 이상(8명)은 영남 출신인데, 대구ㆍ경북과 부산ㆍ경남 출신이 각각 4명이다. 최종 학력으로 따지면 고려대 1970년대 학번이 다수로, 김중겸(현대), 서종욱(대우), 허명수(GS), 김석준(쌍용) CEO 등 4명이다. 고려대 다음으로는 서울대와 한양대 출신의 CEO가 각각 3명이다.
지금은 모두 업계 현안을 두루 꿰고 있지만, 13명 CEO는 경력이 다채롭다. 김종인(대림)ㆍ박창규(롯데) 사장 등 8명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건설업에서 잔뼈가 굵은 반면, 정연주(삼성)ㆍ정동화(포스코) 사장 등 5명은 모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입사해 능력을 인정받은 뒤 임원 혹은 대표이사 승진을 통해 건설업계에 발을 디뎠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대우그룹의 주력 계열사였으나 그룹이 해체되면서 인력 유출 현상이 벌어진 대우건설 출신 CEO가 4명(대우건설 포함)에 달한다는 점. 한화건설 이근포 사장은 76년 대우건설로 입사해 99년 임원으로 승진한 뒤 2005년 한화 부사장으로 옮겼으며, 두산건설 김기동 사장도 대우건설 부사장을 지낸 '범 대우맨'이다.
이들 13명 CEO를 굳이 경영 스타일로 분류할 경우 '현장 중시형'과 '소통 중시형'으로 나뉜다.
현장을 챙겨라
시공능력 1위인 현대건설을 이끄는 김중겸 사장은 철학이 담긴 건축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경영의 시작은 현장이라는 믿음이 확고한 경영자다. 2009년 3월 사장에 취임한 뒤 약 1년 가까이 국내외에 산재한 모든 사업장을 찾아가 장부상에 반영되지 않은 비효율과 숨은 원가를 찾아내 증권업계 애널리스트로부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바쁜 해외 출장일정 속에서도 유럽 각지의 오래된 건축물을 방문해 그 유례와 건축과정에 담긴 역사를 챙길 정도로 인문학에도 관심이 깊다. 서울대 인문대학원의 최고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허명수 GS건설 사장은 업계에서 알아주는 현장형 오너. 특히 해외에선 '영업맨'을 자처하고 세일즈 경영을 실천한다. 해외 출장 때마다 잊지 않고 챙기는 것도 각종 외국어 홍보영상물과 자료들. 발주처 인사들 앞이라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도 마다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너가(家) CEO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영업 실무진들이 봐도 혀를 내두를 만큼 영업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도 설ㆍ추석 명절이나 어지간한 연휴라도 생기면 해외 현장 챙기기에 분주하다. '현장 없인 회사도 없다'는 신조가 몸에 밴 김 회장은 특히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 고위 관계자들 및 발주처 인사들과의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데, 실제 이들 국가에서 수주한 상당 부분은 김 회장 스스로 따내다시피 한 사업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은 한 달의 절반은 국내외 현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올 들어서도 월 한차례씩은 빼놓지 않고 해외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며 수주영업을 독려하고 있다. 동남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잇단 수주 낭보가 쏟아지는 것도 CEO의 현장 격려 덕분이란 게 현장 직원들의 전언이다.
정동화 포스코건설 사장도 군인정신으로 포항제철을 만든 박태준 전 회장 이래로 이어진 포스코의 현장중시 마인드가 몸에 배어 있다. 모기업의 글로벌 경영과 함께 해외 각지에 들어선 사업현장을 챙기기 위해 1년 중 상당 기간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 바쁜 와중에 올 1월부터는 체육계 요청으로 대한체조협회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소통은 성장의 밑거름
올 초 삼성엔지니어링에서 삼성물산으로 자리를 옮긴 정연주 사장은 임직원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강조하며 조직 문화를 새롭게 이끌어가고 있다. 정 사장은 회사의 주요 회의를 특정 관계인들뿐 아니라 전 임직원이 온라인을 통해 공유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자유롭게 의견 교환을 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76년 삼성에 입사한 이후 줄곧 경영지원 및 관리부서에 몸 담았던 경력이 잘 묻어나는 대목이다.
김종인 대림산업 사장은 부하 직원과의 삼겹살 회식을 즐기고, 직원들이 주는 소주 잔을 절대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소통과 배려에 신경을 쓴다. 또 '풍년 곡식은 모자라도 흉년 곡식은 남는다'는 고(故) 이재준 명예회장의 좌우명을 경영의 근간으로 삼아,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경영전략을 중시하고 있다. 이 회사가 에너지 절감 아파트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것 역시 변화를 두려워 않는 김 사장의 경영 스타일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쇼팽의 '야상곡(녹턴) 20번 C#마이너(올림 다단조)'등 클래식 음악을 애호하는 최동주 현대산업개발 사장은 24시간 사장실 문을 개방할 정도로 직원과의 소통을 강조한다. 올해 초 사장으로 부임한 후 휴일을 반납하며 회사의 사업장을 방문해 현장 직원의 애로사항을 챙기는 한편,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콘텐츠&스토리텔링 위원회'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근육강화운동을 하는 등 규칙적인 생활로 마라톤 완주도 가능한 건강 체질이다.
윤석경 SK건설 부회장은 임직원들의 건의사항에 대해 일일이 답을 달아주기로 유명하다. 자신이 만든 인터넷 'CEO라운지'를 통해 경영현황과 회사 정책을 직원들에게 진솔하게 공개하고,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아이디어와 제안들을 경영에 반영하는 열린 CEO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평소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좌우명을 강조하는 박창규 롯데건설 사장은 최근 근무시간을 오전8시~오후5시로 조정(종전 오전9시~오후6시), 조기퇴근을 유도해 직원들이 가정에 좀 더 충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업무 외 직원간 교류 활성화를 위해 사내 동호회 지원도 늘려 현재 야구ㆍ낚시ㆍ볼링 등 5개 사내 직원 모임을 지원하고 있다.
스스로 '열린 경영'을 강조하는 이연구 금호건설 사장은 요즘 경영정상화 시기를 앞당기는 방법으로 임직원과의 소통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매월 경영현황 설명회를 열어 회사의 상황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데, 미처 설명회에 참석하지 못한 직원들을 위해 온라인으로도 생중계한다. 특히 사원ㆍ대리급 직원들과는 수시로 '번개 맥주 모임'을 열고 있다.
이근포 한화건설 사장은 복도나 승강기에서 만난 직원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근황이나 근무 여건 등을 물어보며 지위고하에 관계없이 먼저 허물없이 다가선다. 회사발전을 위해서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평소 이 사장의 소신.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한 덕분에 회사의 급성장에 따라 늘어난 외부 경력사원들도 조직에 빨리 융화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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