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정치인·베스트셀러 작가… "우리 요람은 중학동"
'깨어 있는 젊은 신문'인 한국일보는 국내 언론 사상 최초로 견습기자 제도를 도입했다. 그래서 한국일보에는 창간 첫 해(1954)부터 당대의 인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창간 56주년을 맞은 지금까지 한국일보가 배출한 인사들은 정치ㆍ사회ㆍ문화 등 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정치사와 맥을 같이하다
조세형(1931~2009)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한국일보가 낳은 대표적 정치인 중 한 사람이다. 편집국장과 관훈클립 초대 대표를 역임한 그는 1979년 서울 성북구에서 전국 최다 득표로 신민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좌우명인 그는 합리적 개혁주의자로 평가 받으며 13,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민회의 총재 권한대행에 이어 민주당 특대위원장을 맡았고, 주일대사로 참여정부 시절까지 활동하며 많은 후배 정치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최장수 장관을 지낸 오인환(71) 전 공보처 장관도 한국일보 출신이다. 64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장을 역임한 그는 92년 민주당 총재 정치특보로 정계에 뛰어들어 93년부터 98년까지 5년간 장관으로 일했다. 등을 저술하며 최근까지 활동하고 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한 이원홍(71) 전 문화공보부 장관은 74년 주일본 공사로 발탁돼 대통령 민원수석비서관을 거쳐 85년부터 2년간 문공부 장관으로 봉직했다. 워싱턴 특파원과 정치부장을 지낸 고 김성진(1931~2009)씨는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 대변인과 문공부 장관을 지냈다. 58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고 심명보(1935~1994)씨는 79년 편집국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난 뒤 81년 민정당 공천으로 강원 영월ㆍ평창ㆍ정선에서 11~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심씨는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과 사무총장도 지냈다.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안택수(67) 전 한나라당 의원은 95년 자민련 홍보분과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해 15, 16, 17대 국회의원에 잇따라 당선됐고, 2008년부터는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박병윤(69) 전 국회의원은 65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경제통으로 이름을 날리며 사장과 부회장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박현태(77ㆍ11대), 박실(71ㆍ12~14대) 전 의원도 한국일보에서 언론계 첫 발을 디딘 한국일보 맨이다. 현재 최규식(57) 민주당 의원과 정진석(50) 한나라당 의원이 현역 국회의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정부 부처에서의 활약도 눈부시다. 참여정부에서는 경제부장 출신인 이병완(56)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논설위원을 역임한 이백만(54) 전 홍보수석, 사회부장을 지낸 윤승용(53) 전 홍보수석 등이 있다. 현 정부에서는 신재민(52)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한국일보에서 정치부장과 논설위원을 거쳤다.
언론인의 사관학교
언론계에서 한국일보 출신들의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다. 고 천관우(1925~1991)씨는 한국일보 기자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언론의 거목으로 평가된다. 유신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편집국장까지 지냈다. 등을 저술해 역사가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지낸 고 예용해(1925~1995)씨는 '당대의 인간문화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국내 문화계에 큰 역할을 했다.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재직하며 등을 남겼다.
파리특파원과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성우(76)씨는 '한국의 명문장'으로 통한다. 지난해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는 그가 쓴 라는 문장비가 세워지기도 했으며, 한국시인협회 추천 명예시인과 한국연극협회 추대 명예배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일보와 계열사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권혁승(77) 상임 고문은 73년 제5차 남북적십자회담 신문통신방송공동취재단장으로 평양을 방문한 것으로 비롯해 한국신문편집인협회 감사 등으로 일하며 언론계에서 큰 자취를 남겼다.
현재 한국일보 고문으로 재직중인 장명수(68)씨는 종합일간지 최초의 여성 주필과 여성 사장을 역임해 언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대표적인 여성 언론인이다. 최은희여기자상, 관훈언론인상, 자랑스런이화인상, 삼성언론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으며, 지금도 를 연재하며 독자와 후배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문단ㆍ학계에서도 두각
창간부터 한국일보는 당국 최고 인재를 영입, '문학 한국'이라는 명성을 지켜왔다.
고 신석초(1909~1975) 시인은 고 장기영 사주의 간곡한 부탁으로 창간 이듬해 입사해 문화부장과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17년간 한국일보 문화면을 이끌었다. 고전미의 시적 형상화에 관심을 기울인 그는 등 전통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많은 시를 남기며 한국 근대 문학을 꽃피웠다.
1963~80년 한국일보에 몸담았던 수필가 고 조경희(1918~2005)씨는 한국수필가협회를 창립해 작고할 때까지 회장을 맡아왔고, 여성 문화인 최초로 예총 회장을 비롯해 예술의전당 이사장, 서울예술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방송작가의 대부로 불렸던 고 한운사(1923~2009)씨도 한국일보 문화부장 출신이다. 1966년부터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을 다섯 차례나 지냈으며, 64년 최초 TV 드라마인 '눈이 내리는데' '남과 북' '현해탄은 알고 있다' '아낌없이 주련다' 등 60여 편의 주옥 같은 드라마를 집필했고, '빨간 마후라'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등 인기곡을 작사하기도 했다.
참여적 서정시인으로 불리는 이성부(68)씨도 한국일보에서 일했다.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68문학'의 동인으로 참여했고, 대표적 연작시 '전라도'를 발표하며 1960년대의 암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시세계를 확립했다.
등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소설가 김훈(61)씨는 2000년대 최고의 작가로 통한다. 한국일보 재직 당시 1986~89년 김씨와 박래부(한국언론재단 이사장)씨가 연재한 '문학기행–명작의 무대'는 당시 최고의 인기 기획물로 자리매김했다.
소비자 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정광모(81)씨도 여기자 최초로 청와대를 출입한 한국일보 기자였다. 70년대 초부터 소비자 보호운동을 시작해 소비자연맹회장과 서울YMCA 회장을 맡아오며 40년 소비자 운동에서 큰 업적을 쌓았다. 한국일보 독일특파원을 역임한 최정호(77) 전 울산대 석좌교수는 한독 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독일 십자공로훈장을 받았으며 현재 한독포럼 의장을 맡고 있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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