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IB 개척하라" 공격 앞으로
증시는 위기에 쉽게 무너졌다가도 호황이 되면 쉽게 불타 오르는 곳. 시장의 부침도 심하고 경쟁도 치열하니, 이 업종 최고경영자(CEO)도 '공격형'이 아니고선 살아남기 어렵다. 최근 국내 증권사들은 한국형 투자은행(IB) 개척과 금융 소비자와의 접점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증권업계를 이끄는 파워리더들도 'IB 유전자(DNA)'의 진화에 몰두하고 있다.
글로벌IB와 자산관리 역량의 황금 비율
대우증권은 지난해 4,120억원 영업이익을 내며 업계 1위 위상을 다졌다. 5일로 취임 1주년을 맞은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은 업계가 손꼽는 IB금융 개척자. 대우증권 CEO 취임 이튿날 IB사업부 과장급 이상 모든 임직원을 불러 IB 청사진을 함께 고민한 건, 그가 IB에 승부를 걸고 있다는 점을 각인시킨 대표 사례다. 국내 생보사 상장의 물꼬를 튼 동양생명과 대한생명 기업공개(IPO)와 국내1호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설립도 임 사장의 진두지휘하에 이뤄졌다.
1985년 입사 이래 경력의 3분의2를 IB분야에서 보낸 정태영 IB사업부장이 임 사장을 관련 분야에서 보좌한다. 자산관리 브랜드인 '스토리'를 성공적으로 출시한 안희환 WM(자산관리)부문 대표(부사장), IBK투자증권 시절부터 임 사장과 한솥밥을 먹은 박동영 GM(글로벌마켓)부문 대표(부사장)도 대우증권의 차세대 리더 그룹에 속한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금융에서도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올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한다. 공격형 경영으로 지난 1년간 홍콩법인, 도쿄지점의 신설로 해외 진출에 가속을 붙였고 국내에선 자산관리서비스 'POP'을 도입해 고액 자산가의 호응을 끌어냈다. 박 사장은 삼성생명에서 오래 근무했으나 삼성의 증권사 및 투신운용사 인수와 정착 업무를 주도하며 현재의 금융계열사 구도가 잡히도록 한 일등공신이다.
박 사장을 보좌하는 인물로는 리테일사업본부의 반용음 부사장과 박성우(IB부문), 방영민(법인사업) 본부장 등이 꼽힌다. 반 부사장은 재무관리실장 등을 거친 재무통인데, 지난해 초 리테일사업본부장을 맡은 후 예탁자산 1억원이상 고객을 30% 이상 확대하는 성과를 냈다. 박 본부장은 JP모건, 모건스탠리 등에서 경력을 쌓았고, 방 본부장은 재정경제부 출신으로 법인 영업을 총괄한다.
지난달 삼성생명 IPO를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투자증권은 '국내 최고 IB'로서 자부심이 드높다. 유상호 한투증권 사장은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90년대 대우증권 런던현지법인 근무 당시 한국물 하루 거래량의 5%를 싹쓸이, '전설의 제임스(유 사장의 영어이름)'란 별명까지 얻었다. 유 사장은 2002년 동원증권(한투증권의 전신)에 합류하며 IB와 자산관리가 결합된 한국형 IB모델을 정착시켰다. 올해 초 자산관리서비스 'I'M YOU(아임유)'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도 한국형 IB를 뿌리내리기 위한 것. 주요 영업점을 두루 거친 김정관 개인그룹고객장은 '아임유' 출시 70일만에 가입계좌 7,700개, 4,200억원을 돌파하는 성적을 냈고, IB에 정통한 정일문 기업금융본부 및 퇴직연금본부장이 삼성생명 IPO를 책임졌다.
강한 로열티로 강점 살리는 증권 명가들
미래에셋이 14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의 메인 플레이어로 자리잡게 된 원동력은 '박현주 사단'으로 꼽히는 '인재 풀'이다. 박현주 회장이 미래에셋을 세우고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 '박현주 시리즈'로 혜성같이 등장한 건 1997년. 지금 미래에셋은 국내 주식형펀드 시장 35%를 점유하고, 운용-증권-생보를 아울러 전체 운용자산 7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투자전문그룹으로 발전했다.
미래에셋그룹의 최고의사 결정은 박 회장을 구심점으로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부회장과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이 양대 축을 이루는 삼각편대 구조에서 나온다. 박 회장이 미래에셋의 비전을 제시하면 최 부회장이 전략을, 구 사장은 운용을 책임진다. 최 부회장과 구 사장 모두 박 회장이 동원증권 강남지역본부장으로 이름을 떨칠 때 영업현장에서 발굴한 박현주 사단의 1세대 대표주자이다.
대신증권의 노정남 사장은 지난해 전년 대비 70% 이상 늘어난 영업이익(1,730억원)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브로커리지(주식위탁매매) 부문이 전체 수익에서 64%를 차지할 정도로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올들어선 '금융주치의'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리테일 영업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노 사장은 대신증권 창업주 양재봉 명예회장의 사위로, 은행원(한일은행) 생활을 거쳐 대신증권에 입사했으나 전문경영인으로서 위기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회사의 안정적 성장세를 이끈다. 3세대 경영자인 양홍석 부사장도 본격 경영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신증권에서는 영업통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나재철 기획본부장 겸 홀세일사업단장, 고영민 파이낸셜클리닉본부장, 김영운 경영지원본부장 등은 오랜 지점 생활을 통해 영업능력을 인정받았다.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CEO
은행 중심 금융지주에 속해있는 증권사의 리더들은 그룹 내 계열사들과의 시너지 효과 극대화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IB, 트레이딩, 자산관리 등 모든 사업 분야에서 고른 성적을 보이는 우리투자증권 황성호 사장은 금융회사도 수출기업이 되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인도와 카타르 등 중동지역까지 해외 진출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다이너스클럽카드 한국지사장을 시작으로 아테네은행, 한화 헝가리은행, 제일투자증권, PCA투자신탁운용 등을 거쳐 외국계 금융회사 경영 경험이 많다.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은 '신한 DNA'가 강한 CEO다. 82년 신한은행 창립멤버로 입행했고 대기업ㆍIB그룹 담당 부행장을 지내며 'IB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지난해 신한금융투자 수장을 맡았다. 이 사장은 회사 이름에서 증권을 빼고 업계 최초로 금융투자를 사용, 브랜드 경영에도 앞장 섰다.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서 은행 채널을 적극 활용한 마케팅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부국-현대-하나대투 등 3개사를 거치며 98년 이후 13년째 증권사 CEO로 살아온, 증권업계 최장수 CEO이다. 김 사장의 장수 비결은 시장을 선점하는 공격적 경영 스타일. 취임 이후 하나대투가 취약한 브로커리지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최저수수료(0.015%)의 온라인 주식매매서비스 '피가로' 브랜드를 출시, 증권업계에 '가격경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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