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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창간호 복원/ 56년 이어온 '불편부당 中道' 그 역사의 첫 장이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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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창간호 복원/ 56년 이어온 '불편부당 中道' 그 역사의 첫 장이 살아나다

입력
2010.06.0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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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간호 지면 광고 샘표식품 박승복 회장

신문지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광고는 신문업을 영위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한국일보 창간호에는 모두 11건의 광고가 실렸다. 이중 가장 큰 지면을 할애한 것이 잡지 의 광고였다. 160페이지 분량의 이 잡지의 판매가격은 150환.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4,000~5,000원쯤의 가치가 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외자관리청의 산업용철강재 경매공고, 한국산업은행 남대문지점 이전복귀, 해태캬라멜의 경품광고 등이 게재돼있다. 아쉬운 것은 당시 실린 광고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브랜드는 샘표간장이 유일해, 브랜드의 수명을 50년 이상 이어가기가 그만큼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실제로 1950년대 특허청에 등록된 브랜드 중 지금까지 상표권을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는 5.7%에 불과하다.

서울 중구 필동사옥에서 만난 박승복(89ㆍ사진) 샘표식품 회장은 "한국일보가 창간된 1954년은 샘표간장을 처음 특허청에 등록한 시기여서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해"라며 "이후 지금까지 최장수 브랜드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미수를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 회장은 현존하는 최고령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하다.

박 회장은 "초창기 한국일보와 자택과의 거리가 지척이어서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한국일보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며 "아무리 큰 사건이 터져도 특정 세력이 치우치지 않는 한결 같은 보도 내용이 오늘날까지 한국일보를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창업주인 백상 장기영 사주와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도 소개했다.

박 회장은 "1945년 해방직전까지 나는 한국식산은행(현 산업은행) 함경남도 나남지점을, 백상은 인근지역인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청진지점에서 근무했다"며 "두 은행이 자주 만나 소프트 볼 경기 등을 하면서 친분을 쌓았다"고 했다.

"해방을 이틀 앞둔 8월13일 조선은행에 돈을 찾기 위해 트럭을 타고 청진으로 향하던 중 백상을 우연히 만났다"는 박 회장은 "당시 서울로 향하던 백상을 트럭에 태워, 나남까지 온 뒤 무사히 기차를 태워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과의 만남 덕분에 백상은 자신이 관리하던 예금주 명부와 예금을 통째로 서울로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박 회장은 1959년 재무부에 들어간 뒤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행정조정실장을 거치면서 부총리로 입각한 백상과 두 번째 인연을 맺었다. 그는 "워낙 왕성하게 업무를 보다 보니 얼굴과 손에 늘 땀범벅이 돼있었다"며 "얼굴의 땀을 손으로 훔친 뒤 바지에 닦다 보니 바지가 늘 기름기로 번쩍거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은 "언론은 정도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라며 "한국일보가 권력을 무기 삼지 않고 정도 언론으로서 꿋꿋하게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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