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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에 길을 묻다/ 한국의 중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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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에 길을 묻다/ 한국의 중도 역사

입력
2010.06.0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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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협 강조' 여운형 암살후 중도파 와해…결국 좌우 극단대결에 6·25 참화 불러

이념의 부침이 심했던 한국 근ㆍ현대사에서 중도(中道)는 태생부터 외로운 목소리일 수밖에 없었다.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중도주의의 개념이 아직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고 축적된 연구도 많이 부족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중도의 길은 공론의 장에서 소외돼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엔 현실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중도의 목소리가 마치 집단적으로 실종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한 연구까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사회를 갈라왔던 양극단의 이분법 속에서 이탈하려고 시도했던 흐름은 현재는 물론 과거에도 분명히 존재했다. 식민지 시대에 독립을 위해 좌우를 아우르려 했던 노력, 해방 공간에서 자주적이고 균형 잡힌 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노력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중 그나마 학계의 관심을 받아 어느 정도 연구가 진척된 분야가 해방 정국에서 중도파의 활약이다.

광복 후 좌익과 우익은 공산주의와 반공주의 기치 하에 극단적으로 대결함으로써, 통일의 구심력보다는 분단과 냉전대결로 가는 원심력으로 작용했다. 이 때 중도파는 좌우 세력의 중간에 자리잡으면서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양자의 대결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당시 중도파의 중심 인물로는 우익의 온건지도자인 김규식과 좌익의 온건파인 여운형이 꼽힌다. 이 두 사람은 1946년 좌우합작 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또 중도파의 대표적 조직으로는 좌우합작위원회와 민족자주연맹이 있었다. 김규식, 여운형이 나란히 주석으로 이끌었던 좌우합작위원회는 중도파의 좌우합작운동을 총괄했던 조직이다. 1947년 김규식 주도로 만든 민족자주연맹은 '좌우합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중도세력이 단결해야 한다'는 자각에 따라 결성한 조직이다.

해방정국에서 중도파는 계급논리를 거부하며 민족통일전선을 추구했고, 미국과 소련에 대한 외세의존적 태도를 버리고 자주적이고 현실적인 접근방식을 취했다. 또 갈등과 대립의 해방국면에서 타협과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남과 북의 무력충돌을 피하고자 했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취하기보다 좌우를 결합할 수 있는 노선과 정책개발에 주력했다.

특히 1945년 모스크바 3상회의 이후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했던 신탁통치 문제에 대해선 "3상회의 결정에 따라 임시정부부터 수립해놓고 그 후에 토의하자"는 현실 노선을 택했다.

하지만 해방 공간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자세와, 분열 대신 소통을 지향함으로써 대중의 지지를 받았던 중도파의 활동은 한국전쟁의 발발 이후 사실상 와해의 길을 걷는다. 당시 중도파가 실패한 원인으로는 몇 가지가 거론된다. 먼저 국제적 냉전체제의 고착이라는 외생 변수는 국내의 중도파가 쉽게 넘기 힘든 벽이었다.

또 중도파가 대중과의 연계 고리가 될 수 있는 정당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인물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한 것도 실패 원인으로 꼽힌다. 중도파의 거두 여운형이 1947년 7월19일 암살당한 이후 중도파가 급속하게 와해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정치학자 출신인 민주당 정범구 의원은 "해방 이후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와 우에서 끌어들이는 원심력이 너무 셌던 바람에 중도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며 "좌우의 극단적 대결이 결국 6ㆍ25 전쟁의 참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해방정국에서 중도의 쇠퇴는 비극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사회에서 '중도'의 길은 상당 기간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 있었다. 남북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개발논리를 앞세운 권위적 독재체제 하에서 이념논쟁 자체가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중도가 다시 등장한 시기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한국 사회에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립이 본격화할 무렵과 맞물린다.

하지만 해방정국이나 지금이나, 건전한 중도진영의 입장이 다수의 목소리가 돼야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당연한 명제는 아직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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