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중도에 길을 묻다/ 최장집·박세일 중도를 논하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중도에 길을 묻다/ 최장집·박세일 중도를 논하다

입력
2010.06.08 07:26
0 0

■ "복지 무시하는 보수, 성장 외면하는 진보는 시대 뒤떨어져"

진보ㆍ보수 진영의 당대 논객이자 최고 이론가로 평가되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중도를 논했다.

최근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김호기 연세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두 논객은 진보ㆍ보수 진영 모두 이념적, 정파적 대립과 갈등을 벗어던지고 국가와 사회를 걱정하고 고민한다면 중도의 영역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또 진정한 중도는 상대진영의 장점을 채용하는 열린 자세로부터 도출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념적 대립과 자극적 보도가 횡행하는 한국 언론계에서 한국일보가 이성적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마들어가는 적극적 중도의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김호기 교수= 최근 우리사회에서 이념 갈등 치열합니다. 천안함 침몰사건을 보더라도 보수ㆍ진보 진영 간 간극이 넓고 깊습니다. 그 어디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최장집 명예교수= 해방 이후 민족문제를 둘러싼 좌우 갈등이 냉전과 결합하면서 분단국가로 고착된 것이 치열한 이념갈등을 잉태했다고 봅니다. 억지로 분단국가가 형성된 이후 초기 국가건설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균열이 생겼습니다. 이어 1960, 70년대 산업화가 권위주의정부에 의해 추진되면서 민주화 이전까지 우리 사회의 기본 골격과 구조가 보수세력들에 의해 건설됐습니다.

이어 80년대 이후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민주화 세력이 형성되고 기득권을 지닌 보수세력에 대항하면서 양자 간 갈등이 정치영역의 표면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보수ㆍ진보 진영의 형성이 사회발전에 대한 기본적 콘센서스가 형성된 이후 성립되거나 제도 안의 대립을 통해 점진적으로 정착됐다면 양 진영 간 갈등이 이렇게 격렬하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한마디로 아직 해결되지 못한 민족문제가 민주화 과정과 연결돼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박세일 이사장= 우리 사회 이념갈등은 네 가지 요인이 결합돼 있습니다. 첫째는 일제와 분단과 전쟁을 경험하면서 우리 민족에게는 한(恨)이나 역사적 앙금이 남아있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상황이고 북한이 적화통일이라는 목표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도 주요 원인입니다.

둘째로 우리 사회를 끌어온 보수세력들이 이런 역사 속 한에 대한 치유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또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교육이 지속적으로 필요한데 그 노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좌우 대립논리를 넘어선 새로운 이념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셋째는 보수 진보 양쪽 모두 정치인들이 이념적 대립과 갈등을 정파적으로 이용하며 오히려 갈등을 부추겨 왔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지식인과 언론들도 정파적으로 행동하면서 새로운 이념가치나 사회통합의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점입니다.

최 명예교수= 해방 이후 60년간 한국사회는 분단, 산업화, 민주화, 신자유주의화 등 서구사회가 몇 세대에 걸쳐 경험할 변화를 너무 짧은 기간 압축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 단계의 갈등이 중첩되면서 여러 가지 다른 가치들이 동시대에 한꺼번에 충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박 이사장 말씀대로 치유하고 봉합하는 노력이 더 필요한데, 그런 노력들이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 천안함 사태 등 남북문제 풀어가려면?

김 교수= 지금 전지구적으로 보수나 진보 모두 중도로 수렴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수는 진보적 가치를 중시하고, 진보는 보수적 정책을 차용하는 이념의 통섭이 이우러지고 있습니다.

박 이사장= 21세기 세계화 시대에서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을 위한 정답이 많을 수 없으며 좌우 모두 한 곳에 수렴된다고 봅니다. 좌우 정당 간 정책토론을 진지하게 하면 70~80%는 같은 정책을 택하는 합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나머지 20~30%는 건강한 차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분배나 복지를 무시하는 보수가 있을 수 없고, 성장과 발전을 외면하는 진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 다 필요하고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는 국가발전단계 그리고 국가의 경제조건 등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상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만이 이 같은 수렴현상을 인정하지 않을 뿐입니다.

김 교수= 최근 금융위기 이후 영ㆍ미ㆍ일은 중도진보 경향으로 이동하고, 유럽은 중도보수로 이동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어떻게 보십니까.

최 명예교수= 사회주의 붕괴 후 전세계에 체제적 대안은 사라졌고, 사회갈등의 이념적 범위도 좁혀졌습니다. 유럽이 대표적이지만 과거 좌파나 우파, 사회주의적 세력이나 시장경제자유주의세력이나 모두 공생의 합의적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유럽은 좌나 우가 체제 선택의 차원이 아니라 이미 합의된 틀 안에서 상대적으로 좀더 친노동적이거나 친시장적인 강조점의 차이만 존재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블레어의 노동당은 이전 대처의 보수당 정책을 계승했고, 현재 캐머런 보수당 연립정부는 블레어의 노동당 정책을 계승했습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다소 차이를 보이던 영미식 시장주의모델과 유럽식 복지모델도 수렴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경제위기 이후 복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유럽은 그리스 위기 이후 사회복지를 축소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사회를 보면 보수의 성장지상주의가 일방적으로 우세해 복지와 분배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져 왔습니다. 보수는 복지의 가치를 적극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진보는 단순히 시장경제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에 머물지 말고 실제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현실적 정책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중도적 정책추진이 정권성공의 관건

김 교수=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이 시도된 이후 한국사회의 중도세력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여운형, 김규식 선생의 좌우합작 추진이 냉전상황에서 실현되지는 못했고 이후 조봉암 선생의 중도노선이 좌절됐습니다. 제가 보기엔 90년대 문민정부나 국민의정부도 크게 보면 중도보수, 중도진보 정부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국민의정부까지 중도세력의 흐름을 평가해 주십시오.

최 명예교수= 한마디로 중도가 존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냉전이 아군이냐 적군이냐는 양자선택을 강요하면서 중도세력의 존립기반 찾기가 불가능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입니다. 또 중도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정치상황이 이승만 정부가 독재로 흐르는 구조적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반면 같은 분단국가이지만 독일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다 열고 경쟁을 허용하자 결국 사회민주주의라는 중도 정권으로 수렴되면서 이념 갈등을 정당 간 경쟁이라는 제도권으로 수렴할 수 있었습니다. 전후 패전국인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도 이념적 스펙트럼의 허용 폭을 보다 넓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좌우의 이원화된 대립구도를 민주주의 틀 안에서 합리적인 논의와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현 상황에서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정치인과 지식인에게 그 책임이 돌아갈 것입니다.

김 교수= 우리 사회에서 중도적 가치나 정책들이 제대로 부상한 것은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적 문민정부 시절의 대표적 중도정책은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을 꼽을 수 있고, 진보성향의 국민의정부 시절에는 노사정 위원회 출범이나 국민기초생활권 보장 등을 중도정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박 이사장께서 문민정부 개혁에 직접 참여하셨는데, 이런 개혁작업을 중도세력의 정치적 실험이라고 평가하십니까.

박 이사장= 질문에 답하기 앞서 우선 중도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소 비(非)학문적 표현일지 모르지만 저는 대한민국파와 반대한민국파 사이에 중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이념과 법질서를 거부하는 세력들을 포함해 중도를 추구하는 것은 설득력도 없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해방 이후 좌우합작이 대부분 실패한 것도 북한에 대해 비현실적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와 기본질서를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는 좌와 우,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개인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중도적 노력은 대단히 바람직하고 꼭 필요합니다. 우파 정부든 좌파 정부든 정치는 항상 중도 좌파나 중도 우파일 때 성공합니다.

그런데 민주화를 이룬지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도 우리 사회 이념은 여전히 양극화했고 갈등도 격해진 상황입니다. 그 와중에 중도세력은 여전히 위축돼 있습니다. 문민정부에 참여했을 때 저는 보수 속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개혁적 보수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국민의정부가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가려고 노력한 것도 인정합니다.

최 명예교수= 대체로 동의하지만 한 가지만 첨언한다면 남북문제를 풀어가는데 있어 보수진영 역시 비현실적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천안함 사태를 놓고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정부가 북한을 규탄하고 증오하는 남한 내부 체제단속에만 매달리고 북한의 변화 유도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기적으로 그렇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정하지만 장기적 차원에서 북한의 호전성을 불러일으키는 체제위협 문제에 대해 평화적 해결방안으로 유도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좌파도 민족정서와 이념으로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단순한 통일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박 이사장= 달리 표현하자면 북한 문제에 대해 진보는 유화, 보수는 강경이라는 일차적 접근에 매달려 있을 뿐 양자 모두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유도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양 진영 모두 남북문제를 남한내부의 정파적 이해로만 다뤄왔기 때문입니다.

■ 중도 위해 필요한 것은?

역대정부 정치와 구호만 차별화

김 교수= 지난 10여년 간 한국 정부의 정책을 되돌아보면 최 교수께서 창안한 민주적 시장경제론이 국민의정부ㆍ참여정부 정책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고 봅니다. 또 박 이사장께서 일관되게 주장해오신 선진화론은 이명박 정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중도의 관점에서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최 교수=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모두 구호와 실제 정책의 내용 사이에 괴리가 굉장히 큽니다. 인지적 불일치를 많이 느끼게 됩니다. 보통 참여정부라고 하면 좌파, 진보적 정부로 구분하는데 이념과 구호를 떠나 그런 차별성을 가지지 못했다고 봅니다. 참여정부는 제가 과거 ‘정서적 급진주의’란 표현으로 설명한 바도 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성장중심 정책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억압 등 이전 정권과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특히 좌파라 불리는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현재 우리사회의 재벌위주 구조가 정착됐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와의 차이를 구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회복지 예산 비중이 다소 늘어났다는 상대적 차이를 찾을 수 있겠지만 실제 변화를 조사해보면 그 차이도 미미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도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친서민 중도실용’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실제 경제정책은 사회 최상층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 집중하면서도 중도를 구호로 내건 것입니다. 이처럼 실제 경제정책에서는 별 차이도 없으면서 보수와 진보는 정치영역에서 특히 남북문제를 둘러싸고는 사생결단을 하듯 대립합니다.

앞으로의 문제는 오히려 역으로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경제를 실제로 운영하는데 있어 큰 차이가 없다는 전제를 인정하고 구체적으로 작지만 중요한 차별성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이사장= 참여정부는 반체제파, 합리적 진보그룹, 보수적 관료그룹 세 그룹이 혼재하는 구조였습니다. 세 그룹의 역학관계 변화에 의해 정책 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좌파적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것에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이란 구호도 최교수의 지적대로 일단 구호에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모든 정부는 그 사회에서 어려운 계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측면에서 ‘친서민’은 어느 정부에게나 당연한 의무이며 실천해야 할 숙제입니다.

둘째 실용은 목적가치가 아니라 수단 가치일 뿐입니다. 실용은 좌우 모두에게 필수적 덕목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중도라는 부분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맞는 중도, 한국의 발전단계에 적합한 구체적 중도의 실천목표를 정하는 게 시급합니다. 현 정부는 출범직후 지난 5년, 혹은 10년간의 정부에 대한 반성과 성찰 작업을 했어야 했지만 그것이 없어 다음 단계로의 비전제시가 불충분하였습니다.

진지한 성찰이 중도의 전제

김 교수= 중도의 바람직한 가치, 비전, 전략, 정책으로 어떤 것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최 명예교수= 우선 기계적으로 중도를 설정하기보다는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세력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으며 정치의 장에서 행위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 보수진영은 과거 보수적 정책에 대한 반성과 박 교수의 용어를 빌리자면 어떻게 선진화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 비전을 진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또 진보는 진보대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한 사실적 분석과 논의를 바탕으로 진보가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논의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쌓인다면 결국 보수와 진보의 구체적 정책은 상당히 수렴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양 진영의 수사적ㆍ이념적 대립도 상당부분 해결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박 이사장의 창조적 세계화론은 중도적 정책수렴의 중요한 모델을 보여줬습니다. 내가 보기엔 박 이사장의 사회경제적 비전은 중도이고 민족문제는 보수라는 측면에서 보통 보수로 분류되고 있는 듯 한데 정책면에서는 여러 진보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지나치게 극소수 재벌 위주의 성장일변도 정책에 편향돼 경쟁에서 탈락한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또 내부 경쟁이 너무 치열해 다수의 삶의 질 향상이 상대적으로 旻컨낸윱求? 결국 재벌중심의 성장정책과 노동자가 배제된 노동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 진보진영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박 이사장= 두 가지 중도가 있습니다. 첫째 중도는 대도(大道) 혹은 공도(公道)로서의 중도이며 진정한 중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도자가 사심 없이 공동체를 중시해야 합니다. 두 번째 조건은 좌우의 가치를 절대화하지 말고 공동체 발전을 위해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사회가 우파로 기울어질 때는 좌파를 지원하고, 좌파로 기울여질 때는 우파를 지원해 전체가 조화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반면 편의주의적, 보신주의적 중도도 있습니다. 중도라는 미명하에 시류에 맞춰 개인의 보신과 이익을 추구하는 유형이며 배격해야 할 자세입니다.

결국 대도로서의 중도의 가치는 ▦물질과 정신의 조화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과거 현재 미래의 조화 ▦민족과 세계의 조화 ▦지도자와 국민의 조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중도 언론의 바람직한 역할은?

한국일보의 적극적 중도 역할 기대

김 교수= 올해 창간 56주년을 맞은 한국일보는 중도를 표방해왔습니다. 한국 언론에서 중도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요.

최 명예교수= 언론계에서 중도의 필요성이 나오는 것부터가 중도가 아닌 언론이 지배적이라는 증거일 것입니다. 이는 일부 언론들이 냉전시기에 형성된 교조적 이데올로기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기보다는 구체적인 현실에 발을 딛고 문제들을 공론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열정을 동원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하지 않은 이슈에 대해서도 자극적인 보도를 합니다. 언론이 나서서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일보가 추구하는 중도는 낡은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이성적으로 현실 그대로를 얘기하는 역할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의 정론지들은 모두 중도입니다. 자극적 선동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중도적 보도는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겠지만 결국 우리 사회전체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박 이사장= 언론이 중도의 역할을 맡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언론에서 중도란 첫째가 정파적 가치보다는 국가 전체의 가치를 우선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포퓰리즘과 상업주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사회가 너무 좌로 기울어지면 우의 가치 강조하고, 우로 기울면 좌의 가치를 옹호하는 균형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즉 기계적 균형이 아니라 발전단계와 안팎의 상황에 맞는 적극적 균형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옛사람들은 시중(時中)이라고 말했습니다. 넷째 항상 기존의 이념 가치보다는 한 단계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공동선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여론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언론은 여론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화의 단계로 여과, 발전시켜야 합니다.

최 명예고수= 최근 보수든 진보든 극단적 의견을 주로 대변하는데 매체들이 늘어나면서 여론 여과 기능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됩니다. 정제되지 않은 비이성적 의견들이 그대로 신문에 반영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는 언론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당이 당원의 정치적 의견을 정제해 정책을 제대로 만들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듯 언론도 갈등적, 투쟁적 언어들을 정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박 이사장= 하나 더 지적하자면 최근 언론들이 사건의 본질 보다는 인물의 동정이나 움직임에 더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치 자체도 가십 중심으로 흘러가게 됐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같은 경마중계식 보도를 지양하고 누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나, ‘어떤 가치와 목표를 가지고 있나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합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