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자정 서울 A경찰서 형사팀 당직실. 택시기사 폭행 사건을 조사하던 B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허리디스크로 병원을 오간 지 벌써 1년, 앉아있는 것조차 고통스럽다고 했다. B형사는 "쉬는 날에도 실적 채우느라 병원 갈 시간이 없어 병세가 나아질 기미가 없다"며 "팀원이 모두 스트레스성 대장 증후군, 만성편두통, 고혈압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한민국 형사들이 녹초가 되고 있다. 일선 경찰서의 형사ㆍ강력팀 수사 인력은 줄어드는데 실적 경쟁으로 부담은 오히려 늘고 있기 때문. 설상가상으로 올해부터는 시간외 수당이 삭감돼 월급마저 줄었다. 인력 부족, 업무 과다, 보상 미약 등 민생치안 최전방이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내 일선 경찰서들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각 경찰서의 수사인력이 빠르게 감축되고 있다. 6~8명이던 수사팀 인원 중에 한두 명씩 빼거나 아예 팀 하나를 없애 해당 인원을 행정담당부서나 지구대로 보내고 있다. 현재 관악 금천 남대문 방배 서대문 성북 용산 종암 등 서울의 8개 경찰서가 인력조정을 마친 것으로 파악됐고 다른 곳도 진행 중이다.
일선 형사들은 현장상황을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C경찰서 강력팀장은 "팀장과 당직데스크를 빼면 실제 수사를 담당할 인원은 세 명뿐인데 곧 한 명이 2주 교육까지 가게 돼있어 자잘한 사건 서너 건만 들어와도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수사지원 시스템도 무너지고 있다. D경찰서 강력팀장은 "전과나 신원 등 각종 조회를 신속하게 해줘야 할 전산실 인원도 주간 근무자 한 명만 배치하고 야간에는 아예 비워둬서 아직 인력조정이 진행되지 않은 다른 서의 전산실을 이용하고 있을 정도"라고 불평했다.
반면, 형사들의 업무 부담은 더욱 늘었다. 보통 형사들은 검거 횟수를 기준으로 실적평가를 받는데, 올 2월부터는 인지(認知)사건 조사까지 의무적으로 요구 받고 있다. 쉽게 말해 첩보 등을 통해 사건을 물어오라는 것이다. 인지사건의 경우 살해사건 40점, 강도사건 30점 등 사건별로 점수가 매겨진 데다 1인당 매달 200점 이상을 달성토록 하고 있다.
A경찰서 형사팀장은 "목표 점수가 있으니 당직근무 후에도 편히 쉴 수 없고, 1년에 21일 주어진 휴가도 눈치를 보느라 갈 형편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형사들은 "실적 올리기 탓에 남의 관할에 가서 아리랑치기라도 한 명 더 잡아와야 하는 통에 동료들간에 마찰이 잦다"고 말했다.
이들의 상실감을 더욱 부채질하는 건 얇아진 월급봉투다. 행정안전부는 올 3월 정액제로 지급하던 시간외 수당의 지급방식을 바꿨다. 일한만큼 주겠다는 취지인데, 근거서류를 첨부해 서장의 결제를 받아야 하고 당직근무 중 2시간은 휴게시간으로 지정해 수당지급대상에서 뺐다. 이 때문에 형사팀 6년차 경장의 경우 시간외 수당이 지난해 대비 최고 월 20만원이 줄어 40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
일선 형사들은 "밖에 나가 범인 잡아오는 게 일인데 근거 자료 만드는 게 쉬운 일이냐" "종일 잠복근무를 섰다가 검거에 실패하면 눈치가 보여 수당 신청도 못한다" "인력이 줄고 업무가 늘면 최소한 금전적 보상이라도 해줘 사기를 올려야 하지 않느냐" "집값 떨어진다고 아파트 주민들이 순찰마저 거부하는 현실을 지휘부가 아는지 궁금하다" 등 불만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형사 조직의 인력 개편은 예산상 문제로 시작한 일이라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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