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기록을 세웠을 때는 '아 드디어 해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 번째는 그냥 덤덤하던데요. 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9초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31년간 한국육상에 채워졌던 저주 같은 족쇄를 연거푸 열어 젖힌 김국영(19ㆍ안양시청)은 자신이 세운 남자 100m 10초23 한국신기록에 대해 그다지 흥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무엘 프란시스(23ㆍ카타르)의 9초99를 넘어 아시아 신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겠다는 포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강태석(35) 안양시청 감독은 "김국영은 100m에 필요한 순발력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다. 운동에 대한 집중력도 좋다. 근력이 약한 것이 흠인데 웨이트 트레이닝만 보강하면 9초대 진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키 176cm, 몸무게 68kg으로 단거리 육상 선수로 '왜소'해 보이기까지 한 김국영은 하지만 발목 유연성이 탁월하다는 '신의 선물'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의 이 같은 장점은 경기 관양중학교 2학년때인 2005년 당시 이종기 체육선생님의 눈에 띄면서 육상을 시작했다. 이어 강태석 감독의 지도아래 초반에는 주로 400m 계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듬해 100m에서 동급 최강자로 발돋움했다. 2007년 평촌정보산업고로 진학한 뒤부터 100m와 400m계주에서 고교 1인자로 자리를 굳혔다. 특히 지난해 춘계중고대회에서는 10초47을 찍어 고교신기록을 작성하는 등 단거리 계보를 이어갈 재목으로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올 초 안양시청에 입단한 김국영은 장재근 단거리 국가대표 기술위원장, 이종윤 국가대표 육상코치의 집중 지도를 받고 대표팀 에이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 5월 전국종별대회에서는 각종 스트레스로 평소 70㎏이던 몸무게가 5㎏ 이상 빠져, 후반 가속도가 붙지 않아 10초49를 찍는데 그쳤다. 장 위원장은 이에 대해 "(김)국영의 근력 보강을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을 강화했고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몸무게를 70.5㎏까지 회복시켰다"며 이와 함께 '넌 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를 꾸준히 심어줬는데 제대로 들어 맞은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도 "보통 100m 세계기록은 키 196㎝의 우사인 볼트(24ㆍ자메이카)가 나오기 전까지 175㎝~185㎝ 사이의 스프린터가 많이 작성했다"며 김국영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 육상계 "동계올림픽 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얻어"
"아마 육상인들이 미몽에서 깨어났을 겁니다. 지도자가 정신 똑바로 차리면 한국 육상이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좋은 예를 남겼습니다."오동진(62)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남자 육상 100m에서 31년 만에 한국기록이 0.11초 줄어든 10초23을 찍자, "이제 새로운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며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올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에서 한국 남매들이 잇달아 금메달을 따내는 것을 보고 이제 남은 것은 육상뿐이라며 자책했던 오 회장은"동계올림픽을 지켜보면서 육상인들도 '우리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그런 분위기가 오늘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10초23. 한국육상이 그토록 갈망하던 100m 신기록이 나왔지만 우사인 볼트(24ㆍ자메이카)가 보유한 세계기록(9초58)과는 0.65초 뒤진다. 볼트가 100m 결승선을 통과할 무렵 김국영은 8m가까이 뒤 떨어진 채 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2007년 아시아 기록(9초99)과도 비교해도 0.24초, 이토 고지가 1998년 쓴 일본 기록(10초00)과도 0.23초 차다.
하지만 세계육상선수권에 당당히 출전할 수 있는 B등급의 기록(10초28)에도 못 미치던 한국기록을 단숨에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던 100m 기록을 일거에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다른 종목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특히 김국영과 함께 레이스를 펼친 임희남(26ㆍ광주광역시청)과 여호수아(23ㆍ인천시청)
의 10초32와 10초33도 내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육상의 선전을 기대하게 할 만큼 희망적인 기록으로 평가된다.
대한 육상연맹 서상택 이사는 "남자 100m가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준기록을 통과했다는 점이 이번 기록의 가장 큰 의미"라며 "이제 남은 것은 마라톤에서 한국기록(2시간7분20초) 경신의 바통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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