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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49> 한국의 혼례문화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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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49> 한국의 혼례문화 고쳐야 한다

입력
2010.06.0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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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남3녀의 5남매를 두고 있는데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첫째인 아들 결혼식은 1990년 8월에 압구정 성당에서 올렸고 둘째인 딸의 혼례식은 91년 2월에 방배 성당에서 올렸는데 모두 밖에는 일체 알리지 않고 순수한 가족행사로 치렀다. 그리고 예단 등 결혼식에 따르는 모든 절차도 최대한 간소화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간편하고 마음이 편안해서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우선 결혼이란 상대방이 있는 것인데 사돈댁 쪽에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 주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쪽이 딸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실제로 그런 것들이 말썽이 되어 혼인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행히도 우리 사돈댁들은 잘 이해하고 협조해 주었지만 나로서는 신경이 쓰이는 문제였다.

그날 하루의 일이기는 하지만 한 쪽은 많은 하례객이 줄을 서 붐비는데 한 쪽은 그렇지 못해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대인관계에 있었다. 나는 지인들의 관혼상제에 빠짐없이 다니면서 나는 알리지 않고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보니 지인들에게 부담감을 주게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셋째인 딸의 결혼식은 1995년 6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올렸는데 관행대로 청첩장도 보내고 축의금도 받았다. 노태우 대통령 내외분을 비롯해서 지난 날 공직생활을 함께한 분들이 오시고 학교 동문들, 학계 인사들, 그리고 사회 지인들이 모여서 성황을 이루었다. 축의금도 많이 들어와서 그날 행사비를 쓰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보니 여러 가지 폐해가 크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했다. 사회적인 폐해는 예견했던 바이지만 나 스스로도 예상치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청첩장을 보내느라 사람을 가려내고 보낼 주소를 확인하는 일도 내게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청첩장을 보내고 축의금까지 받고 보니 누가 오고 누가 안 오고 또 누가 얼마를 내고 하는 것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은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날 오시고 축의금까지 내주신 분에게는 나도 답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의식이 생기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98년 6월 넷째인 딸의 결혼식과 2000년 6월 다섯째인 막내아들의 결혼식은 다시 첫째와 둘째처럼 밖에 알리지 않고 순수한 가족행사로 치렀다. 서울대 호암관에서 올린 막내아들의 결혼식에서는 예단도 없애고 신랑은 평소 입던 양복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고 예식을 올렸으며 절약한 그 경비를 저축통장에 넣어 주었다.

내가 자녀들의 혼례식을 이와 같이 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혼례문화의 낭비적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평소 느껴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유럽과 미국에서 혼례식을 본 일이 있는데 사치스럽게 혼례식을 올리는 부유층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매우 검소하고 실용적이었다. 이들의 혼례식은 교회에서 신부나 목사님 앞에 서서 혼인을 서약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회관이나 골프장, 부유한 사람들은 호텔에서 아주 가까운 친지와 친척들만을 초청하여 조촐한 잔치를 베푼다.

예식장 비용이 크게 드는 것도 아니고 예단이나 장롱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장롱은 필요 없는 사회이고 집은 모든 사람이 월세에 살고 있으므로 부부가 벌어서 월세를 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는 신혼부부 스스로가 알아서 혼례준비를 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혼례가 부모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며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다.

여기 비하면 우리나라 혼례는 사회적 낭비가 너무 크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려 축의금을 받고 음식을 대접한다. 축의금은 못살 때 상부상조의 필요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 형편에서 검소한 혼례식을 하는 데는 필요치 않은 것이다. 예식장에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그리고 축의금이 많이 들어올수록 성대한 혼례식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루 예식장 비용만도 큰 부담이다. 양가에서는 서로 귀금속 예물을 마련해야 하며 신부 쪽에서는 신랑 쪽 가족과 친척들에게 줄 예단을 준비해야 한다. 요즘에는 이러한 것들이 현금화하여 거액의 현금이 오간다고 한다. 여기에 부모들은 가재도구와 집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전셋집이라도 얻어 줄 경우 이것은 부모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며 사회적으로도 큰 낭비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면 청첩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하는가. 바쁜 일이 있어도 안 갈 수 없는 것이 한국사회이니 청첩장은 마치 세금고지서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축의금을 들고 가서 혼주에게 왔다는 것을 알리고는 바로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과 같은 교통상황에서는 그렇게 하는데도 한나절이 넘게 걸린다. 이 얼마나 큰 사회적 낭비인가. 이러한 Ⅷ?비용이 직접비용만 해서 일 년에 수십 조원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다. 이 비용이면 우리나라 실업인구 100만 명에게 매달 몇 백만 원씩의 생활비를 부담해 줄 수 있다는 계산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질을 선진화하자면 생활을 합리화하고 낭비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낭비적인 혼례의 관행과 문화를 고치는 것이 그 중 하나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생활개혁은 부유층과 지도층에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산업화는 물질생산이 주도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선진화는 의식과 생활개혁이 선행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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