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역사상 최악인 멕시코만 원유유출 사태는 환경적 재앙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사태가 미국 환경운동가나 정책결정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복합적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원유유출은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워 그 때마다 환경운동에 '승리'를 안겼다.
1969년 미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해안에서 폭발에 따른 시추시설 파열로 야기된 기름유출은 이듬해 4월22일 첫'지구의 날'선포를 거쳐 지금도 지속되는 지구보전 캠페인을 촉발시켰다. 당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은 '연방환경정책법'을 제정했고 태평양ㆍ대서양 연안에서의 새로운 석유시추를 금했다. 20년후인 1989년 미 알래스카 연안에서는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가 좌초, 엄청난 양의 원유가 바다를 뒤덮었다. 이 때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북극 야생동물 보호구역'에서의 석유시추를 포기했다. 환경론자들에겐 전화위복의 계기였던 셈이다.
멕시코만 원유유출의 경우도, 현재까지는 과거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4월20일 멕시코만 시추선 폭발로 원유유출이 시작됐는데 공교롭게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그 3주전에 미 동부 연안에서의 신규 석유ㆍ천연가스 시추 허용을 공식 발표했었다. 20여년만의 재개 조치였다. 물론 원유유출 사태 이후 오바마 대통령은 이 정책을 즉시 다시 접었다. 나아가 폭발 및 원유유출 등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시추 불가'를 유지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그는 석유시추의 '영구' 또는 '무기한'중단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대목은 대선 때 그토록 반대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왜 연안 석유시추를 허용했다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여야 했느냐 하는 점이다. 미 의회에서 에너지ㆍ기후변화 대처 법안을 통과시키는데 공화당측 지지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시추를 허용해도 이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원유유출을 과거처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은 말할 필요도 없이 석유채굴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석유회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믿음은 여지없이 깨졌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측은 연일 바다로 쏟아져 들어가는 유출 원유의 양 조차 정확히 파악해내지 못했다. 더욱이 이런 저런 '첨단'방식을 동원했지만 사고 발생 50일이 가깝도록 파손된 유정을 틀어막는데도 실패를 거듭했다. 급기야'늑장 대처'비난으로 궁지에 몰린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며 "내가 틀렸다"고 실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지난 5일 자신 명의로 네티즌들에게 보낸 전자메일에선 "최고 수준의 과학자와 기술자 수백명이 동원됐다"고 강조했지만 이는 역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심해에서의 작업을 과학기술이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반증했다.
이처럼 과학기술이나 이익집단 주장에 대한 과도한 믿음은 한번 파괴되면 돌이키기 어려운 환경 문제에 있어 치명적일 수 있다. 그래서 환경을 다루는데 과학은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일 뿐이고 과학 외에 '플러스 알파'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주장을 내치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는 또 4대강 사업이 충분한'과학'인지, 과학이라도 그렇게 완충지대 없이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옳은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고태성 국제부장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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