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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로댕의 '입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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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로댕의 '입맞춤'

입력
2010.06.0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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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풍경 탓인지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는 유달리 비극적 로맨스가 많다. 베로나는 으로 유명하다. 인근의 만토바는 난봉꾼 공작과 사랑에 빠져 끝내 죽음에 이르는 어릿광대의 순진한 딸 이야기 의 무대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도시 리미니에 전해 내려오는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비극적 이야기도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테가 살았던 시대의 이야기다.

라벤나의 영주 구이도는 18세의 아름다운 딸 프란체스카를 옆 도시 리미니의 영주 지안치오토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 성정이 포악한 데다 다리를 절었고 추남이었던 지안치오토는 프란체스카가 결혼을 반대할 것을 염려해 수려한 용모를 지닌 자신의 동생 파울로에게 대신 맞선을 보도록 했다. 지안치오토의 계략대로 프란체스카는 파울로를 만나 첫 눈에 반한다.

리미니에 도착해 계략을 알아차린 프란체스카는 절망의 나날을 보낸다. 유일한 기쁨이 있다면 성안에서 가끔씩 파울로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란체스카는 우연히 파울로와 한 방에서 조우한다. 그들은 심심풀이 삼아 를 쓴 책을 펴놓고 렌슬럿이 어떻게 사랑에 옭매이게 되었는지 읽는다. 손가락으로 행간을 짚어 나가던 그들은 이윽고 운명적으로 피할 수 없는 장면에 이른다. 렌슬럿이 아더왕의 왕비와 키스를 나누는 구절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를 통제 할 수 없었다.

질투에 휩싸인 지안치오토는 두 사람을 끌어내 살해 하였다.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는 죄의 대가로 지옥에 떨어진다. 육욕의 죄를 지은 자들이 머무는 지옥의 제 2옥에서 광풍에 쓸려 다니며 매질 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의 스승과 지옥을 여행하던 단테는 "추운 계절에 찌르레기가 퍼덕이면서 하늘 가득히 떼 지어 날아가듯 죄지은 영혼의 무리가 바람결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윽고 그 죄지은 무리 중에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를 발견한 단테는 "사랑은 무엇에 의해, 또 어떤 방법으로 서로의 안타까운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는가"묻는다.

잠시 바람이 잠자는 동안 단테에게 다가온 프란체스카가 심경을 고백한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갚는 것이 사랑의 숙명. 사랑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나를 사로잡아 보시다시피 지금도 여전히 그의 팔 안에 있습니다. 사랑은 좋아서 우리 두 사람을 모두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사랑의 대가로 모진 벌을 견디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단테는 탄식하며 동병상련의 깊은 동정심을 보인다.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돼 수십 년간 쓰라린 유랑생활을 하고 있던 단테에게도 비참한 식객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은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파울로와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는 단테의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이 장면을 그림과 조각으로 남겼다. 항상 호주머니에 을 넣고 다닐 만큼 단테의 열렬한 팬이었던 로댕에게도 파울로와 프란체스카 이야기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 역시 카미유 클로델과 연인관계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댕은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를 주제로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 서울 시립미술관에 전시 중인 로댕의 은 그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특히 석고로 만들어 더욱 눈길을 끈다. 변하기 쉬우면서도 한편으로 순수해 보이는 흰색과 부서지기 쉬운 석고의 물성이 혼란한 사랑의 본질을 섬세하게 번안하고 있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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