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천안함 사태로 한창 뒤숭숭했던 지난달 18일 미국에서는 중요한 선거가 있었다. '슈퍼 화요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였다. 11월 중간선거에 나설 민주ㆍ공화 양당의 후보를 뽑는 경선 중 이날 유권자들의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선거가 많아 미 언론이 붙인 이름이다.
분노하는 미 유권자들
4개 주(州)에서 열린 이날 경선은 워싱턴 정치에 대한 미 국민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의원 경력 30년의 5선 중진인 알렌 스펙터 현 상원의원이 매관매직 논란까지 부른 백악관의 노골적 지원 사격에도 민주당 경선에서 해군 출신 조 세스텍 하원의원에게 완패했고, 블랜치 링컨 상원의원은 악전고투 끝에 이겼으나, 과반수를 얻지 못해 결선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공화당에서는 보수성향 유권자 단체인 '티 파티(tea party)'의 지지를 받은 랜드 폴 후보가 당 지도부의 상대 후보 지원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 후보 지명을 따내는 파란을 일으켰다.
경선에서 현직 의원들의 고배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경선에서 떨어진 상ㆍ하원 현직 의원과 경선 패배를 예상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의원들이 20여명에 이른다. 하원의 경우 현직 의원의 경선 패배가 2008년 4명, 2006년과 2004년 각 2명이고, 상원은 같은 3번의 선거에서 1명뿐이었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따르면 2일까지 의회 선거에 나선 후보자는 2,341명으로 FEC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5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정권교체 이후 첫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이 패하는 것은 워싱턴의 징크스처럼 돼 있다. 견제심리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민주당 뿐 아니라 공화당에 대해서도 유권자들의 분노가 몰아 칠 기세다. 집권당 심판 차원이 아닌 워싱턴의 기성 정치판에 대한 선거혁명이란 말이 더 적합하다. 중간선거 승리가 예상되는 공화당 조차 보수 유권자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 지 몰라 난감해 하고 있다. 독자후보를 내겠다는 티 파티의 극단적 운동은 공화당 후보들의 입지를 흔들고 있다.
워싱턴 정치가 배척되는 것은 신뢰의 추락 때문이다. 경기부양, 건강보험, 금융개혁, 이민개혁 등 굵직한 현안마다 의회는 파당적으로 대립했다. 공화당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을 비난하고, 민주당은 공화당이 정치적 의도로 국정을 뒤흔든다고 역공한다. 유권자들은 절망했다. '의회는 불신해도 의원은 지킨다'는 워싱턴 격언이 무너졌다고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구태 정치에 대한 심판
미국 정치를 보면서 1년 반 전 출범 때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워싱턴을 개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낡은 '워싱턴 정치'를 답습하고 있다. 입맛에 맞는 후보를 밀기 위해 경쟁 상대를 회유하는 '공작정치'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 법은 어기지는 않았다는 듣기에도 안쓰러운 변명을 한다. 전임 조지 W 부시 정권과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고 많은 '선언'을 했지만, 정작 달라진 것을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부시 정권보다 더 완고하고 비밀스럽게 변해간다는 말이 많다.
6ㆍ2 지방선거에서 한국의 집권 여당이 참패했다. 원인은 결국 정치의 구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세종시, 4대강 문제를 덮기 위해 천안함 사태를 이용하려는 시대착오적 '북풍' 정치를 하려 든다는 유권자들의 의혹과 분노이다.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국이나 미국은 별 다를 게 없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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