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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랏샤이마세" 남대문 상인들 일어 열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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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랏샤이마세" 남대문 상인들 일어 열공 중

입력
2010.06.0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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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남대문시장 내 새마을금고 2층 강당. 140여명의 수강생들이 강사를 따라 일본어를 소리내어 외치느라 구슬땀을 흘렸다."오바상은 아줌마구요. 바를 길게 해서 '오바아상'은 할머니입니다."강사의 설명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아하'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자 그럼 '얼마예요','얼마입니다'를 다시 한 번 해볼까요."

강당을 가득 채운 수강생들은 다름아닌 남대문 시장 상인들. 30대 젊은 옷가게 사장님부터 머리 희끗희끗한 60대 아주머니까지 다양했다. 돋보기 안경을 내려쓰고 교재에 한글 발음으로 깨알 같이 받아 적거나, 옆 사람 교재를 꼼꼼히 쳐다보며 베낀다.

이 날 수업은 서울상공회의소 중구상공회가 마련했다. 올 초 회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던 상의 측이 남대문 시장 상인들에게 물었더니 "하루 평균 1만 명 가까운 일본 손님들이 오는데 일본어 좀 시원하게 해봤으면 좋겠다"는 답이 가장 많았던 것. 이후 외국어 특수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이토모재팬'측에 시장 상인을 위한 강의를 의뢰했다. 이혜숙 강사는 "4달 가까이 상인들을 만나 어떤 강의를 바라는 지, 일본인들이 어떤 표현을 많이 쓰는 지를 살펴봤다"며 "강의 교재도 물건 값 등 숫자, 아줌마, 아저씨 등 호칭을 비롯해 실제 시장에서 겪는 내용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수강생들은 묵은 체증이 가시는 듯 흥분된 표정이었다. 공예 관련 가게를 운영하는 나미자씨는 "매일 일본인 손님들이 십여명씩 오지만 어머니에게 배운 일본어 몇 마디로 상대하기에는 너무 벅차다"며 "장사하면서 꼭 필요한 단어나 표현을 배우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포장 가게를 운영해 온 장수영 사장은 "말이 안 통하니 일본 손님이 물건 고르면 계산기 두드려 값을 보여주는 게 전부였다"며 "열심히 배워서 더 좋은 물건을 맘껏 추천해주고 싶다"고 환히 웃었다. 심지어 황학동 상가에서도 수업을 듣겠다고 아침 일찍 찾아오는 '청강생'까지 생겨날 정도다.

이 날 강의실을 찾지 못한 이들도 꽤 많다는 게 김철동 중구상공회 사무국장의 설명. 김 국장은 "수업 시간을 오전으로 정하고 강의실도 시장 안에서 마련했지만 혼자나 부부 단둘이 장사를 하다 보니 가게를 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강의 중간에 헐레벌떡 들어와 교재만 들고 돌아가거나, 수업도중 가게 문 여는 시간 때문에 마지 못해 일어서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서울남대문시장주식회사 김찬겸 기획계장은 "처음 40명 정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3배 가까운 상인들이 신청을 했다"며 "지금도 강의를 듣고 싶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강의는 매주 월, 수, 금 3번씩 25회에 걸쳐 진행하고, 앞으로 중국어, 영어로 해당 외국어를 다양화하는 한편 동대문, 명동 등 다른 지역 상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도 개설할 계획이다.

서울상의의 '지역 맞춤형 강의'는 남대문 시장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부터 종로의 주얼리 관련 상인, 동대문의 패션상가 상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성공한 보석 디자이너와 관련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로부터 ▦다이아몬드, 진주 등 보석 감정 ▦최신 패션 트랜드 ▦디자이너로서의 자부심과 자세 ▦브랜드화 등 마케팅 전략 ▦세무 등을 주제로 한 강의에 수 십 명의 상인들이 참여했다. 5년 전부터 귀금속 관련 사업체를 운영해 온 허윤정씨는 "주먹구구식으로 가게를 운영하면서 어떤 것이 부족한 지 조차 몰랐다"면서 "다양한 주제로 이어지는 강의를 들으면서 시야가 확 넓어졌고 매출도 덩달아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상의 관계자는"피부에 와 닿는 교육이 상인들의 실력도 키우고 자부심을 주는 동시에 매출도 늘어나게 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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