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헝가리와 이탈리아다.
유럽 재정위기는 최초 발화점인 그리스에서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서, 불길이 국경을 넘어 갈수록 번지는 양상이다. 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으로 옮겨갔던 이 불씨는 지난 주말 남유럽 불량재정 4개국인 'PIGS(포르투갈ㆍ이탈리아ㆍ그리스ㆍ스페인)' 가운데 가장 온전했던 이탈리아와, 동유럽의 헝가리에까지 도달했다.
남유럽에 이어 동유럽까지
지난 주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헝가리가 '제2의 그리스'후보로 급부상했다.
헝가리는 2008년 리먼 사태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서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 그런데 새로 집권한 헝가리 중도우파 정부가 4일(현지시간) "경제상황이 심각하고 IMF와 약속한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스스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 가능성을 내비쳤다. 더구나 헝가리 정부는 과거 사회당 정부가 재정관련 데이터를 왜곡했다고 비난하며, 올 재정적자 규모가 당초 추정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4.5%보다 많은 7.5%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 금융시장은 즉각 큰 충격을 받았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동유럽으로 전이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기 때문. 유로화는 뉴욕 외환시장에서 1.1966달러에 거래돼 4년 만에 처음으로 1.2달러 밑으로 추락했고, 미국 뉴욕증시(다우존스지수)는 3.15%나 폭락하면서 1만포인트 선이 붕괴됐다.
'4마리 돼지(PIGS)' 가운데 그나마 재정위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던 이탈리아에서도 때맞춰 이상징후가 엿보이기 시작했다. 정부부채(2009년 GDP대비 115.8%)가 그리스만큼이나 심각하다는 소식에 시장에선 이탈리아 국채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선 "올해 만기 도래하는 이탈리아 국채 2,410억유로 중에 1,700억유로는 연장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진짜 위기? 마녀사냥?
'제2의 그리스'우려에도 불구, 전문가들은 헝가리를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결코 건강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새 정부의 국가부도 위험 경고는 과장됐다는 것. 골드만삭스는 "헝가리는 벌써 위기를 겪었고 IMF 등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리스보다 1년6개월 앞서가고 있다"면서 이번 디폴트 경고를 새 정부에 대한 국민 기대치를 낮추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로 해석했다.
현대증권 이상재 투자전략부장도 "헝가리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기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고 정부부채 비율도 그리스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헝가리 재정불안이 그리스와 같은 위기로 확산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와 이탈리아가 시장의 '블랙 리스트'에 새롭게 오른 것은 세계 금융시장에 분명 불길한 징후라는 지적이다. 일단 시장이 패닉 상태에 들어가면 조금이라도 위기 징후가 있는 곳을 마녀사냥식으로 공격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실제 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남유럽과 동유럽의 위기설이 계속 확산된다면, 서유럽 주요 금융기관들도 동반 부실화할 수 있기 때문에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투자전략팀장은 "유럽 재정위기가 금융위기로 전이되고 글로벌 더블딥으로 이어진다면, 글로벌자금의 탈(脫)신흥시장 현상이 심해져 국내에서도 외국인 자금의 추가 이탈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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