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종사자 입장에서 이번 지방선거 여론조사 예측 실패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민심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비쳐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이다. 선거 전 언론들이 연일 쏟아냈던 여론조사 분석과 실제 결과의 차이를 보고 국민들이 느꼈을 황당함과 분노에 대한 보상 차원의 면구스러움에서만은 아니다. 섣부른 판세 단정으로 승자에 지지가 쏠리도록 한 '밴드왜건(bandwagon)' 효과를 유도하고, 야권 지지층의 투표 의지를 꺾지 않았는가 하는 뒤늦은 자기반성이 더 크다.
일부 언론은 부동층이 막판 견제론 쪽으로 쏠렸기 때문이라며 애써 책임을 회피하려 하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물론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전국 곳곳에서 야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공개된 그 어떤 여론조사에서도 한나라당 참패, 민주당의 대약진을 예견한 것은 없었다. 투표 일주일 전 마지막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 결과 지지율 변화가 20%포인트에 달한 것은 여론조사가 엉터리였다는 사실 말고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유권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해 투표에 혼란을 끼친 점은 뼈저리게 자성해야 할 대목이다.
불신 큰 6ㆍ2선거 여론조사
여론조사 예측 실패의 원인으로 먼저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표집틀이 전화번호부인데, 여기에 등재된 가구가 57%에 불과하고 유선전화 없이 휴대폰만 사용하는 가구가 늘어나는 점에 비춰 대표성이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사가 시행되는 시간에 집에 있는 경우가 드문 20~30대 젊은 층의 샘플 확보가 어려워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게 된다. 무응답률을 낮추기 위해 고안된 여러 과학적인 조사방법들이 생략된 채 이뤄진다든지, 표본오차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숱한 문제도 이번 일을 계기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기술적인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게 있다. 이른바 '여당 집중화 현상' 또는 '야당 디스카운트 현상'이다. 군사독재 시절 여론조사 시 혹시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야당을 지지하면서도 여당을 찍었다고 거짓 응답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데서 생긴 말인데, 현 정권에서 재연됐다는 것은 그 의미가 간단치 않다.
그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형성돼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로 해석할 수 있는 까닭이다. 최근 유엔 특별보고관이 방한해 '한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위축됐다"고 우려한 데 이어 지난 한 해 미네르바 사건과 PD수첩 기소 등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는 국제앰네스티 보고서가 발표된 것만 봐도 수위가 심각함을 일깨운다. 민주화 이후 표현의 자유를 구가해온 젊은이들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자기 표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고, 결국 이와 같은 엉터리 여론조사가 나오게 된 것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선거 전 각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질 때 인터넷 게시판에는 '여론조사 믿지도 속지도 맙시다' 라는 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또 여론조사기관이 보수 성향이면 야당 지지자가 응답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날 정도라고 한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커 선동을 위한 도구라는 인식이 젊은 층에 각인돼 있는 것이다.
욱죄는 사회에 숨통 틔워야
이번 선거를 통해 집권층이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은 강요된 사회의 보수화, 경직화가 보수정권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는 점이다.
중간평가적 성격을 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현 정권이 민심 수습을 위해 할 일이 많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경직되고 음울한 분위기에 숨통을 트는 방향으로 국정기조를 선회해야 한다. 모든 여론조사가 한나라당 압승을 외칠 때 일각에서 '침묵의 숨은 표'들을 거론했지만 이 정권은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숨은 20%의 실체가 드러났으니 해야 할 일도 자명한 셈이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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