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미니크 모이시 지음ㆍ유경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ㆍ256쪽ㆍ1만3,000원
갈등하는 세계를 분석하는 가장 널리 알려진 틀은 세계를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결로 본 사무엘 헌팅턴의 (1993)이다. 서구중심 시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헌팅턴의'문명충돌론'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만 해명되지 않는 냉전 이후 세계질서를 적실하게 조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도미니크 모이시(64) 프랑스국제문제연구소 고문은 그러나 이 문명충돌론과 다른 층위에서 세계질서를 조망한다. 그는 (2008)에서 문화 사이의 관계, 국가 행동,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요소는 종교ㆍ역사ㆍ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문명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구분이 도식적이고 주관적일 수도 있다는 비판을 의식하듯 "세계의 감정 패턴을 지도로 그리는 것은 위험한 시도일 수 있다"고 안전판을 깔지만 "이런 패턴이 존재하지 않는 척 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면 세계는 어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일까. 그는 희망, 굴욕, 공포 라는 세 단어를 각각 아시아, 이슬람, 서구와 짝을 지어준다.
유구한 문화적 전통과 급속한 경제발전이 결합돼 21세기의 강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국이나 안정된 민주정치체제를 바탕으로 뚜벅뚜벅 경제성장의 길을 걷고 있는 인도의 사례를 거론하며 아시아는 '희망'이 넘치는 대륙이라고 말한다. 분량이나 분석의 깊이로 보면 아시아에 대한 분석은 그저 맛보기 정도로 느껴지지만, 그가 서구인이기 때문인지 서구와 이슬람 세계에 대한 분석은 집요하다.
서구는 왜 '공포'에 질려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하면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고속성장을 하는 아시아와 날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이슬람세계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유럽인들에게 경제위기는 공포심을 발화시키는 불씨가 됐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불법이민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맞서겠다고 약속했고, 스위스 선거 운동에서 극우파들은 이민자들을 '골칫덩어리'로 표현했다. 대서양 건너편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공화당의 선거운동은 노골적으로 사회, 문화, 경제적 두려움의 악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9ㆍ11 테러 이후의 미국 사회는 두려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세계가'굴욕감'에 짓눌려 있다고 보는 그는 굴욕감의 뿌리가 되는 사건을 1683년 오스만 투르크의 빈 탈환 실패로 본다. 이 시기를 즈음해 서구에서는 르네상스가 시작됐으며 이슬람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서구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공포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슬람이 서구 혹은 이스라엘에 표출하는 감정을 '희망 없는 굴욕'이라고 깎아 내린다.
심지어 이들은"자신에게 굴욕감을 느끼게 한 이들의 수준까지 도달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을 자신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통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는 식으로 굴욕감을 표출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면서 다른 문명의 감정읽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인간들은 근본주의 종교와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혹하기 쉽고, 다른 사람과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내 감정만 중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문화공동체의 정서에 대해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이미 세계의 정서적 국경선이 지리적 국경선만큼이나 중요한 시대에 살게 됐다는 것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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