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설 풀고 씀/예옥 발행ㆍ208쪽ㆍ1만2,000원
조선시대 한 선비가 남명 조식 선생을 찾아 방자히 물었다. '寶之'와 '刺之'가 뭐냐고. 남명이 화를 내며 내쫓자, 선비는 이번엔 퇴계 이황 선생을 찾아가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그러자 퇴계가 걸쭉한 답을 내놨다. 전자는 "걸어다닐 때 숨어 있는 것이지. 보배처럼 귀하지만 사고 파는 것은 아니야(步藏之者 而寶而不市者也)", 후자는 "앉아있을 때 숨어 있지. 사람을 찌르긴 하지만 죽이진 않아(坐藏之者 而刺而不兵者也)"라는 것. 이를 보고 선비는 남명 보다 퇴계의 덕이 더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조선후기 음담패설을 모은 '기이재상담(紀伊齎常談)'에 실린 내용이다. 31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책은 20세기 전후에 일본인이 편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저본(底本)은 확실치 않다. 소메야 도모유키 일본 이바라키그리스도교대 교수가 2008년 일본의 한 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는데, 정병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최근 이를 번역하고 해설한 '조선의 음담패설'(예옥 펴냄)을 출간했다.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성이 통제되긴 했으나, 하층민의 삶은 상당히 자유로웠다. 책에 실린 다양한 음담패설도 당시 분방했던 민간의 성 풍습을 보여준다. 시골 아전이 민가의 여자에게 당당히 성을 요구하거나 동성애로 학질을 치료했다거나 하층민 여성이 소대남편(두번째 남편)을 두는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책은 이와 함께 일본의 역관이 한국어 교재로 삼기 위해 한글로 엮은 또 다른 음담패설집인 '유년 공부'의 일부(6편)도 수록했다.
조선 전기에는 선비들에 의해 음담패설집이 편찬되기도 했으나, 유교적 통제가 심해진 후기에는 음담패설이 필사본으로 간신히 전해지다 일제 강점기에 대부분 간행됐다. 정 교수는 "조선 후기 음담패설은 전해지는 게 극히 드문데, 기이재상담은 작품성이 높고 음담패설의 다채로운 양상을 보여준다"며 "음담패설은 통속문학 중 가장 저속하지만 당시의 풍습과 속어 등을 전해주는 버릴 수 없는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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