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웸 아크판 지음ㆍ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발행ㆍ430쪽ㆍ1만3,000원
나이지리아 출신의 예수회 사제이자 소설가인 우웸 아크판(39ㆍ사진)의 첫 소설집이다. 현재 모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그는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던 2005년 케냐 나이로비를 배경으로 비참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업 성매매 여성이 되려고 하는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인 첫 단편 '크리스마스 성찬'을 발표하며 주목 받았다.
이 책엔 이 작품을 비롯,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르완다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를 각각 주인공으로 한 중단편 5편이 실렸다. 작가가 꼼꼼한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현지의 참상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수록작 '가봉에 가기 위해 살찌우기'는 과거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아프리카 기니만 일대에서 여전히 성행하고 있는 아동 인신매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작품 속 어린 남매를 어른들의 성적 도구로 팔아 넘기려고 하는 자는 다름 아닌 그들의 삼촌.
에이즈에 걸린 형 부부를 대신해 아이들을 맡아 키우던 그는 거간꾼에게 오토바이를 받은 대가로 조카들을 인근 국가인 가봉으로 밀입국 시킬 채비를 하다가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변심의 대가는 참혹하다. 삼촌은 거간꾼 일당에게 맞아 죽고, 남매는 감옥처럼 개조된 삼촌의 집에 도로 갇히게 된다.
결국 남자 아이는 탈출을 감행하지만 여동생까지 챙길 여력은 없다. "나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동생의 울부짖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달리고 또 달렸다."(206쪽)
1990년대 르완다 내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 '부모님의 침실'의 주인공은 후투족 아빠와 투치족 엄마를 둔 소녀. 그녀의 집에 칼과 도끼로 무장한 후투족 폭도들이 들이닥친다. 그중엔 소녀의 삼촌도 있다.
그가 소녀의 아빠에게 칼을 건네며 소리친다. "어제 내가 내 임신한 아내 안네테를 죽일 때 너도 이 사람들과 함께 있었잖아. 너도 네 가족들을 지킬 수 없어."(410쪽) 아빠의 칼이 엄마를 내리치는 광경을 소녀는 고스란히 바라본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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