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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클래식 시대를 듣다' 위대한 음악으로 역사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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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클래식 시대를 듣다' 위대한 음악으로 역사를 읽다

입력
2010.06.04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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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지음/너머북스 발행ㆍ500쪽ㆍ2만6,000원

어지러운 수식어와 낯선 전문용어, 음악을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무엇처럼 그려 밑도 끝도 없이 숭배하게 만드는 배타적인 신비주의… 클래식음악을 서술하는 방식은 대체로 그렇다. 덕분에 클래식음악은 고급스런 취미 혹은 세련된 교양을 드러내는 격조높은 소비 품목으로 전락했다.

이 책에는 그런 허위의식이 없다. 클래식 입문서에서 흔히 보는 음악사의 에피소드나 작곡가의 신상명세는 꼭 필요한 경우만 나온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악성 베토벤' 같은 표현이나 '고독한' '천재적인' 따위 진부한 형용사를 추방했다.

저자의 목표는 위대한 음악이 시공을 초월하는 진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역사와 철학과 주변 예술을 종횡으로 샅샅이 훑으며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음악의 본질을 향해 돌진한다. 그는 음악에서 시대의 육성을 듣는다. 저자는 클래식에서 "자기 시대와 밤새도록 씨름하는 작곡가의 팽팽한 심줄을 느낀다." 내면의 불안과 고뇌를 낭떠러지로 몰아가며 끝내 타협하지 않고 파열음을 터뜨리는 작곡가들을 보면서, 불협화음을 듣는다. 이런 책을 기다려왔다. 음악을 포함해 모든 예술은 시대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시대를 뛰어넘는 것임을, 결코 진공상태에서 뛰쳐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책을.

이 책은 클래식음악으로 역사를 읽는다. 300여 년 전 비발디부터 고전과 낭만을 거쳐 오늘의 현대음악까지 각 장을 시작하는 작곡가 연보에 세계사 연보를 나란히 붙인 것은 그래서이다. 예컨대 비발디 연보 옆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 뉴턴의 는 그 시대 철학적 성취와 지적 환경을 설명하는 장치이고, 브람스 연보 옆에는 마르크스의 이 등장해 전통주의자로 알려진 브람스의 시대가 격동의 전야임을 드러낸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접근 방식을 본격적으로 펼쳐 클래식의 역사(혹은 클래식과 역사)의 이중나선 구조를 보여준다. 비발디의 음악이 지닌 약동하는 선율과 화려한 색채감은 그가 활동한 18세기 베네치아가 물과 축제와 쾌락과 사생아의 도시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맞물린다. 드뷔시가 현대음악의 문을 여는 배경에는 '모더니티의 수도'가 된 19세기 말 파리가 겹친다. 당시 파리를 산책하면서 현대에 매혹당하고 동시에 멀미를 느끼던 보들레르의 시와, 현대를 해명하고자 보들레르의 파리에 주목한 벤야민의 보들레르론, 동시대 인상파 화가들을 지지한 소설가 에밀 졸라를 호출해 드뷔시로 수렴한다. 말러의 음악에서 비틀거리며 쇠락해가는 유럽 근대문명의 호흡을 읽고, 베토벤 음악에서 혁명의 시대였던 18세기의 열망과 고전시대의 질서를 넘어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하는 19세기의 고독을 본다.

슈베르트를 다룬 장은 감동적이다. 흔히 '병적인 낭만주의'로 불리는 그의 음악을 저자는 달리 해석한다. 슈베르트는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반동과 복고의 시대를 살았다. 당시 빈은 메테르니히의 경찰국가 체제 아래 '강요된 평화'에 짓눌렸고, 달리 돌파구가 없었던 예술가들은 내면으로의 망명을 택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저항인 셈이다. 저자는 슈베르트와 메테르니히 시대를, 시인 기형도와 1980년대 한국의 군사정권 시절과 대비시키면서 "불길하면서 불안했던 야만의 시대"를 돌아본다. 그 시절 한국 청년들이"낮에는 박노해, 밤에는 기형도의 시를 읽고, 낮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밤에는 들국화의 노래를" 들은 것은 격동과 반동의 시대를 견뎌내기 위해 필요했던, 따라서"이율배반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이다. 슈베르트와 기형도에서 공통 분모를 뽑아내 역사를 읽어내는 이러한 시각은 기존 책들에서 볼 수 없던 것이다.

이 책은 음악의 역사적ㆍ사회적 맥락을 복원하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갇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이 음악에 몰입함으로써 시대를 뛰어넘어 솟구치는 음악의 고유한 힘에 마음과 귀를 내어준다. 음악을 이야기할 때 저자의 말투는 뜨겁고도 강건하다. 치장을 던져버린 채 정직하고 힘찬 단어들로 문장을 구사한다.

20여 년 전 남한강 수몰지구를 지나다가 빗 속에 들었던 무당이 징 치는 소리를 떠올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은 외롭고 가난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 그들 내면의 거룩하고 존엄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연대인 것이다."음악의 본질에 대한 언급 중 이처럼 장엄하고 간절한 정의는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음악을 고상한 취미나 그럴듯한 교양으로 소비하는 오늘의 음악문화에서'애이불비의 연대'는 이상주의자의 백일몽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참 고갱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요즘 우리가 소비하는 음악과 그것을 생산하는 음악가 중에 그만큼 사이비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종종 발견하는 가시돋친 발언들은 주로 그런 풍경을 겨냥한 것이다.

이 책은 여러 용도로 읽을 수 있다. 첫째, 역사책으로 훌륭하다. 책 표지에 실린 추천사의 말 그대로, 이 책은 음악으로 역사를 읽고 역사의 창으로 음악을 듣는다. 둘째, '제대로 된' 클래식음악 입문서다. 저자가 엄선한 명반 78장을 소개하는 미니박스는 몇백 쪽 짜리 음반 가이드북도 부럽지 않게 음악의 에센스를 정확히 뽑아내고 있다. 200자 원고지 한 장이 겨우 될까 싶은 짧은 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이 엄청나다. 셋째, 문학적 에세이로 추천한다. 저자의 문장은 인문학적 교양과 깊이를 갖춘 좋은 글쓰기의 모범이 될 만하다. 오르한 파묵ㆍ도스토예프스키ㆍ토마스 만 등의 소설, 보들레르ㆍ기형도ㆍ오규원의 시, 벤야민과 아도르노, 테리 이글턴의 문예이론 등 그가 인용하는 글들은 적절하고도 풍부하다. 해당 작품과 책을 당장 읽어보고 싶어진다. 음악 또한 당장 듣고 싶어진다. 클래식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겐 흥미를, 즐겨 듣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눈을 선사할 책이다.

저자 정윤수(43)를 음악 칼럼니스트 겸 시인 김갑수는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부른다. 아닌 게 아니라 오지랖이 넓기도하다. 문예비평, 인문학운동, 축구 평론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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