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던 국제 구호선단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다. 건축 자재와 의약품, 교육 기자재 등 인도적인 지원 물품을 싣고 가던 민간 선박을, 그것도 공해에서 공격해 사상자를 낸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그 물품들은 가자지구의 150만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생명줄 같은 것이 아닌가.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봉쇄 정책 때문에 가자지구는 지구에서 가장 큰 감옥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식량과 물조차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그런 조건에서도 끝내 삶을 이어가는 힘은 희망이 아니라 눈물과 증오일 것이다.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세계 곳곳의 시위 사진을 보면서 다시 몸이 떨렸다. 피 묻은 손바닥을 가득 찍은 현수막으로 이스라엘의 학살 행위를 고발하는 장면은 팔레스타인의 피눈물과 그보다 더 격렬한 복수의 불길을 떠올리게 했다.
또다른 사진에 충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청년들이 이번 사건에서 자국 군대를 지지하는 집회를 하면서 비둘기와 풍선을 날리는 장면이다. 이들이 말하는 평화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이 이끌어갈 이스라엘은 과연 지구촌의 선량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반면, 같은 유대인이면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사람도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이 대표적이다. 유엔인권이사회(UNHRC)가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조사단 파견을 결의한 1일, 그는 베를린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사건은 '비인간적' 행동이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봉쇄를 풀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지만 이스라엘에서 성장해 이스라엘 국적을 갖고 있는 그는, 음악을 중동 평화의 디딤돌로 삼고자 애써온 행동하는 음악가다. 1999년 팔레스타인 출신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만든 그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아랍 청년들로 이뤄져 있다.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원수지간 자식들이 모여 평화의 꿈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에서 한국은 기권했다. 47개 회원국 중 32개국이 찬성했고, 미국ㆍ네덜란드ㆍ이탈리아는 반대했다. 기권한 나라는 한국을 비롯 영국ㆍ프랑스ㆍ벨기에ㆍ일본 등 9개국이고, 나머지 나라는 투표에 불참했다. 국제정치라는 게 도덕률로만 돌아가는 건 아니라지만, 한국의 기권 소식에 실망했다.
이런 와중에 내주 초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이 방한한다. 방한을 앞두고 국내 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번 사건은 '이스라엘의 정당방위'라고 강변했다. 그리고 이번 방한은 양국간 협력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호응하듯 양국간 벤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1억달러 규모의 공동펀드 설립 계획이 발표됐다. 이스라엘에 한국 무기를 팔 기회가 늘 것이라는 기대로, 3일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관련주가 상승했다. 그 무기들이 팔레스타인을 겨냥하건 말건, 돈만 벌면 그만인가.
다시 실망했다. 아무리 정치는 정치이고 경제는 경제라지만, 살인을 저지르고도 미안한 마음조차 없는 악한과 악수를 하고 거기서 얻을 이득만 계산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페레스의 방한을 환영할 수 없는 이유다.
오미환 문화부 차장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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