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8표 투표는 어렵고 불편했지만, 선거는 역시 참 의미 있고 좋은 것이다.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의는 정치와 행정의 방향을 바꾸게 하고, 타성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우스갯소리로 "유권자만 없으면 국회의원 할 만하다"고 말한 국회의원이 있었는데, 표를 가진 유권자의 힘과, 선거라는 민주제도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알게 해 주는 말이다.
선거는 인물을 키우는 묘판
공직 출마자들은 선거를 통해서 크거나 되살아나거나 무대에서 사라진다.
6ㆍ2선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 떠올랐다. 새 인물이 뜨면 패한 사람은 일단 무대를 내려오게 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일시에 공직의 주변에서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니다. 재기를 위해 노력한 끝에 되살아나는 사람들도 많다.
6ㆍ2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계열의 사람들이 부활했다. 그들이 부활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동안 스스로 폐족(조상이 큰 죄를 짓고 죽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족속)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했던 노 전 대통령의 '젊은 동업자' 안희정 씨는 충남지사에, '좌희정 우광재' 중 한 명인 이광재 전 의원은 강원지사에 당선됐다.
이들의 당선에는 당연히 '노무현 바람'이 작용한 게 사실이지만, 그것만을 전부로 볼 수 없다. 네 번의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나 친노계가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는 곳에서 이들은 인물론과 세대 교체를 내세워 승리했다. 특히 이 당선자의 경우 "10년 뒤 성공한 도지사로서 강원도를 대표해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겠다"는 '차세대 인물론'을 강조해 표를 얻었다.
원하는 경우든 원하지 않는 경우든 지방선거에서 큰 승부를 겪은 사람은 중앙 무대에 진출할 통로를 확보했다고 봐야 한다. 선거는 인물을 키우는 묘판이다. 숨막히는 승부 끝에 낙선하긴 했지만, 한명숙 전 총리는 이번에 상당한 정치적 힘을 얻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차기 대선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겨루게 될지 모른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분명히 차세대 인물 중 한 명이다.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차세대 인물이 되려면 주민(국민)들과 늘 접촉하고 소통하면서 바닥민심을 호흡해야 한다. 정말이지 그런 사람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에 당선된 어떤 도지사는 평소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농사를 짓고 있는 그의 부인은 명품의 명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서울의 한 구청장 당선자는 늘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주민들과 접촉하고 소통해온 사람이다. 6ㆍ2선거의 양상을 결정 지은 바닥 민심은 이런 바탕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정당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 됨됨이와 평소 행태가 당락 여부에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는 여도 야도 없고, 이념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주민들의 삶과 직결된 지방자치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번 선거에서 지옥을 경험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실상 패배했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승리를 받아들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런 자세를 잊지 말고, 그 자신의 다짐대로 지지해 주지 않은 사람들의 뜻까지 헤아려 균형 잡힌 행정을 하기 바란다. 그도 차세대 인물 중 하나다.
여야의 정책대결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패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이미지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학자가 있다. 그가 지적한 이미지 문제는 앞으로도 이명박 정부에 가장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서민들과 유리되면 못 자라
명문 대학을 나오고 재산이 많으면 무엇 하나? 서민들과 유리된 채,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로는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정부라고 이미지가 고착돼 간다. 그러니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말대로 한나라당은 이번에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조차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6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일반인들,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겠지만, 머리로 하는 정치의 한계를 모두가 깊이 인식해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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