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깬 대접전 서울시장 선거 다음날
"살아 돌아왔습니다. 뵙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밤새 주무시지 못하게 해 죄송합니다."
새벽 내내 피 말리는 개표 드라마 끝에 기사회생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는 3일 오전 11시께 시청 기자실에서 이렇게 소회를 털어놨다. 쉽게 돌아올 줄 알았던 친정에 지옥 문턱까지 갔다 온 탓인지 목소리는 무척 떨렸다. 억지로 입가만 올라갈 뿐 얼굴은 굳을 대로 굳었고, 평소의 호탕한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박빙의 선거는 상상도 못했다"며 "상처뿐인 승리"라고 고개를 낮췄다.
오 당선자는 "방송사 출구 조사가 나왔을 때는 반신반의했지만 2~3시간 개표를 보면서 맞아들어 가는 구나 싶었다"며 "직접 마련한 정책들이 사장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면서 오히려 일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매번 큰 폭으로 이겨 왔기 때문에 한 번도 선거에서 패배를 예감하거나 생각조차 못했었다"는 말도 했다. 그가 거쳐 온 탄탄대로 정치 이력을 보면 이 같은 오판도 이해할 만하다.
전날 투표가 마감된 오후 6시 이후부터 이날 오전 7시께 시청에 오기까지 그는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2일 오후 5시40분께 선거 캠프를 떠나 혜화동 시장공관으로 들어간 그는 부인 송현옥씨와 TV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10시50분께 한명숙 후보가 4,700여표 차이로 역전했고, 결국 그는 다음 날 12시30분께 캠프를 방문, "패색이 짙은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공개 발언을 남기고 공관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캠프 관계자들과 나눈 격려의 악수는 사실상의 작별 인사였다. 오 후보의 측근은 "실제로 당선에 비관적이었고 민선 5기는 없겠다고 판단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분위기 반전된 것은 강남 3구의 개표가 진행된 4시15분께. 오 후보가 1,500여표 차로 재역전했고, 오전 6시께 그는 캠프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 당선자는 10시30분께 하절기수방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첫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간부들에게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3주일 만에 출근했다. 차질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게 해 줘 각별히 감사한다"며 "선거 현수막과 벽보를 제거해 도시 미관을 살릴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는 오후 들어 현안보고를 받는 사이사이 잠깐씩 졸면서도 업무를 고수했다. 국립현충원 참배 같은 계획은 이미 없어졌다.
그는 이날 "민심의 뜻을 깊이 헤아리겠다""이번 경험이 자양분이 될 것이다"는 말을 반복했다. 민주당 소속 새 구청장이나 시의원들과도 소통도 시작할 계획이다. 민심의 무서움을 뼈 속 깊이 체험한 오세훈 2기 시정이 어떻게 변모할지 안팎의 시선이 고정돼 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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