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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8) 낙원떡집 이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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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8) 낙원떡집 이광순

입력
2010.06.0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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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획 첫회에서 용수산 창업주는 당신이 나고 자란 개성을 이렇게 회상 했었다.

"상인들이 모두 개성에 모여드니 항상 식재료가 넘쳤고, 부잣집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번갈아 떡을 해서 온 동네에 고소한 절편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내 어릴 적인 1970년대를 생각해 봐도 좋은 날, 좋은 집은 꼭 떡을 해서 먹었다. 어른들 생신떡, 돌떡, 제사떡, 폐백떡, 고사떡 등 명분을 달리한 떡들이 큰집에서 작은집으로, 앞집에서 뒷집으로 나눠지곤 했다. 서양식 과자나 케이크가 없던 시절, 떡은 시각적으로도 볼거리가 많은 음식이었다. 갖은 고명을 얹고 자연 식재료로 물을 들인 종류만도 수십 가지. 남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것'이 최고의 부가가치로 인정받는 이 시대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국의 맛은 바로 '떡'이다.

낙원 떡집 본점

안국역에서 내려 교동초등학교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큰 길에 있는 낙원떡집(nakwonfood.co.kr)을 만나게 된다. 낙원떡집이라는 상호를 쓰는 떡집이 서울에만 수백 군데에 이를 정도인데, 그 많은 곳들이 '떡'하면 낙원동을 떠올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현재 낙원떡집의 맛을 이어가고 있는 이광순 대표의 외할머님이다. 근 한 세기 전, 워낙 솜씨가 좋았던 외할머님은 비원 근처의 상궁들 거처를 오가시며 궁중에서 먹는 떡 맛을 전수 받으셨다. 떡 만드는 솜씨가 하도 좋아서 전쟁 통에 피난을 다니면서도 간간이 떡 장사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러다 전후 낙원시장에 정착한 것이 1958년도였다.

"당시에는 낙원시장이 서울에서 최고라 했어요. 고관대작들이 다 근방에 살고, 좋은 집에서 먹는 좋은 식재료가 낙원시장으로 제일 먼저 올 수 밖에 없었지요."

자연히 낙원동에는 하나 둘, 떡집이 모여 생기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돌절구를 찧는 소리가 시장 안에 가득했고, 떡을 하러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여 들었다. 순 서울 사람으로 사대문 안에 내도록 살아온 외할머님 솜씨는 역시 순 서울 사람인 어머니 김인동 여사가 이어받았고, 다시 따님 이광순 대표에게 건너간 솜씨와 떡맛은 4대째 계승자인 아드님에게 넘겨질 준비를 하고 있다.

낙원떡집만의 차별점은 좋은 쌀, 좋은 콩, 좋은 쑥 등 무조건 좋은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아침식사 대용으로 완벽한 맛과 영양을 자랑하는 현미 쑥 찰떡을 예로 들면, 떡을 씹는 내내 쑥 향이 입 안을 가득 메운다.

"제주도에서 독점으로 계약 재배를 한 쑥만 쓰니까 맛이 진하고, 농약 걱정도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지요."말씀하시는 이광순 대표는 자식 자랑하듯 본인이 만드는 떡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떡은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하지만 손맛으로, 옛날 방식을 써서 완성해야 합니다." 쌀가루만 해도 손으로 치는 것과 기계로 치대는 것은 맛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고.

실제로 먹어보니 분명 백설기인데, 입 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는 맛이 난다. 입 안에서 거칠거칠하고 딱딱한 맛을 내는 시중의 백설기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보드라운 쌀가루와 함께 씹히는 까맣고 파란 콩이나 밤이 신선한 재료로 만든 떡임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준다. 쌀가루는 쌀 맛이 나고 콩은 구수한 콩 맛이 나고 밤은 달달한 밤 맛이 나는 고급스러운 맛이다.

이 맛을 위해 제주도에서 계약 재배한 쑥은 매년 6,000kg을 가져다 떡을 만들고, 기계화하지 않고 무조건 수작업을 반복 또 반복한다. 인건비가 지난 세월보다 열 배는 뛰었건만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으면 외할머님이 만드시던 그 떡 맛이 안 난다며 기계화를 한사코 거부하는 이광순 대표의 고집이 낙원떡집만의 맛을 오늘도 만들고 있다.

사대문 안 입맛과 강남

외조모에서 모친으로, 다시 이광순 대표 본인으로 솜씨의 대물림을 받으면서 세월은 잘도 흘러갔다. 불은 장작불에서 연탄불, 다시 석유버너에서 도시가스로 세월 따라 변해왔다.

변한 것은 불뿐만 아니다. 동네도 변했다. 가회동, 교동 등을 중심으로 번화했던 골목들이 이제는 한산하다. 서울시내 좋은 식재료는 다 모여들던 낙원시장의 전설은 사람들의 가슴 속과 지나간 바람결에만 기억된다.

이광순 대표는 세월 따라 동네가 변하고, 동내 따라 사람의 입맛이 변하는 것이 아쉬워 신세대에게 떡을 알리는 사업을 시작했다. 바로 인사동에 첫 분점을 낸 것이었다. 2005년 봄, 한 조각씩 도톰하게 포장된 각종 떡을 모던한 접시에 담고 낙원떡집 인사동점은 문을 열었다. 지나가던 20대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고, 버터나 밀가루 대신 곡물과 견과류가 몸에 이롭다는 점 등이 부각되면서 서서히 인기를 끌었다.

4대째 전수자인 아드님은 강남에 분점을 내야 한다, 홈쇼핑과 연계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재료와 손맛은 기본, 하지만 모두가 제 잘난 맛에 사는 요즘 세상에서 자기 홍보 없이 손님이 온전히 맛으로만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말이다. 이광순 대표는 대량생산을 하다 보면 그 맛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입 안에 떡을 넣었을 때의 그 식감, 그 씹는 맛, 그 맛을 위한 배합과 재료, 그리고 손맛은 하나하나 신경을 써서 만들어야 그 맛이 난다는 말이다.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고집과 아드님의 마케팅 감각이 더해지면 또 어떤 발전이 생길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취재차 오랜만에 찾은 낙원떡집의 맛은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그 맛을 아는 사람들은 지방도시에서도 일부러 떡을 맞추러 올라오거나 주문을 한다. 달지 않아 씹을수록 더 먹고 싶은 맛은 은은한 매력이 있다. 취재 중 맛을 본 여러 종류의 떡 가운데 유난히 생각나는 현미쑥떡, 곱게 빻은 콩가루로 분을 칠한 듯 뽀얗던 인절미, 국내산 콩이 구수하게 씹히던 백설기 등은 매일 아침, 아니면 주말 브런치 메뉴로 애용할 계획이다. 외국인들이 서울을 찾았을 때, 면세점이나 백화점에 앞서 낙원떡집을 찾도록 만들고 싶어진다. 남들에게 자랑하고픈 맛이 우리 떡, 서울식 떡 맛의 원조 낙원떡집이다.

■ 떡으로 꾸미는 브런치

브랙퍼스트와 런치를 합쳐 부르는 '브런치'는 우리로 치면 '아점'과 같은 말이다. 주말이면 으레 게으름을 피우게 되고, 느긋하게 자고 일어나 아침 겸 접심을 먹는 것이 우리나 서양이나 다 같은 모양이다.

낙원떡집의 떡 맛을 본 후 주말 아점을 여러 종류의 떡으로 차려 보았다. 질 좋은 현미와 제주에서 재배한 무농약 쑥을 아낌없이 넣어 만든 찰떡은 특히 지친 위장을 달래기에 좋다. 콩이랑 밤을 잔뜩 올린 설기는 입안에서 사르르 부서지는 쌀가루 맛이 압권이다. 우유와 곁들이면 아이들 간식으로도 권할 맛이다. 밥 대신 빵만 찾는 아이들의 입맛을 잘 만든 백설기나 쑥설기로 잡아봄 직하다. 밀가루, 버터, 설탕에 절어 있던 아이라면 떡에 꿀을 곁들여 보자. 꿀을 곁들일 요량이면 찰떡이 맛있다. 견과류와 밤이 더해져 달큰하고 고소한 찰떡은 아이들이 꼭꼭 씹어가며 먹을 만하다. 떡은 반드시 차와 함께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유, 주스, 연하게 내린 원두커피 등과도 함께 즐겨보자. 평일 아침 대용으로 먹을 경우, 그 포만감 때문에 점심시간까지 든든한 속으로 버틸 수 있어서 특히 좋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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